성조기 집회는 소용없다, 미국은 봉황처럼 움직인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미국의 중동전략에서 ‘항공모함’과 같은 역할을 하며 미국의 힘을 후방으로 활용해 자국의 국력보다 넓은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며 중동 개입의 범위를 줄이려 하자, 이스라엘은 미국이 여전히 가까이 있을 때 이란·헤즈볼라·하마스를 최대한 약화시키고 시리아에서 튀르키예 같은 새로운 지역강국의 부상까지 막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 집회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의 개입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미국은 동맹에 대한 정서보다 자국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인다. 결국 이스라엘의 가장 큰 위험은 미국이 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국인 채 중동보다 다른 지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성조기를 흔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머물 이유를 계속 제공하거나 미국의 지원이 줄어도 스스로 생존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질서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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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 집회는 소용없다, 미국은 봉황처럼 움직인다

이스라엘에서도 성조기가 등장하는 집회가 있다.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성조기를 들기도 했고, 가자 전쟁 이후 인질 가족들은 미국이 네타냐후 정부를 압박해 협상을 성사시켜 달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국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었다.

한국에서 성조기가 등장하는 집회와 정치적 맥락은 다르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비슷한 기대가 있다.

미국은 우리 편이라는 기대다.

우리가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고, 오랫동안 동맹이었으며, 미국의 세계전략에 기여해왔으니 결정적인 순간에도 미국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국제정치에서 성조기를 많이 흔든다고 미국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우정보다 국익을 따라 움직인다.

봉황은 아무 나무에나 내려앉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역시 그렇다.

자신의 힘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계산한다.

그리고 지금 그 계산법이 달라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미국의 중동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였다.

흔히 이스라엘을 중동에 떠 있는 미국의 항공모함에 비유한다.

물론 이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미국의 괴뢰국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은 독자적인 국가이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미국이 원하지 않는 행동까지 할 정도로 높은 전략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이스라엘이 매우 유용한 전략자산이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견제했다.

시리아를 견제했다.

헤즈볼라를 견제했다.

중동에서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을 감시하고 때로는 직접 공격했다.

미국이 모든 문제에 직접 군대를 투입하지 않아도 이스라엘이라는 강력한 지역국가가 미국과 상당 부분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움직였다.

이스라엘에게도 좋은 거래였다.

이스라엘은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은 훨씬 더 큰 후방이었다.

전투기와 정밀무기를 공급했다.

요격미사일을 공급했다.

정보를 공유했다.

필요하면 항공모함을 보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호르무즈 해협과 세계 에너지시장까지 번지면 그 문제를 최종적으로 관리할 능력을 가진 것도 미국이었다.

이스라엘은 자기 국력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뒤에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미국이 중동에 예전만큼 많은 힘을 쓰고 싶어 하지 않기 시작했다.

미국이 약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곳에서 훨씬 큰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중국이다.

미국에게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상대했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이란과는 다른 차원의 경쟁자다.

중국을 견제하려면 항공모함도 필요하다.

잠수함도 필요하다.

장거리 미사일도 필요하다.

반도체도 필요하다.

AI 데이터센터도 필요하다.

전력망도 필요하다.

미국 제조업도 다시 키워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중동에서 사용하는 패트리엇 한 발은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중동에 보내는 구축함은 서태평양에 동시에 배치할 수 없다.

중동전쟁에 사용하는 재정은 미국 국내의 산업투자와 국가부채 감축에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은 전선을 줄이려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것도 이런 큰 흐름 속에서 볼 수 있다.

중동을 완전히 버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은 모든 지역의 문제를 자신이 직접 해결하는 패권국에서, 동맹국이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자신은 가장 중요한 경쟁에 힘을 집중하는 패권국으로 변하려 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이스라엘의 고민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동전략에 매우 유용한 항공모함이었다.

그런데 항공모함이 아무리 강력해도 함대가 작전지역을 떠나버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이 중동의 방어범위를 줄이기 시작하면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후방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지켜주는 것과 이스라엘이 원하는 중동질서를 만들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존립하는 것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무기도 공급할 것이다.

결정적인 위기가 온다면 개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원하는 모든 전쟁을 미국이 함께 수행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이스라엘이 시리아에서 튀르키예의 영향력 확대를 싫어한다고 해서 미국까지 튀르키예를 적으로 돌릴 이유는 없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완전히 무력화하고 싶다고 해서 미국이 무기한 이란과 전쟁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이스라엘이 가자와 레바논에서 자신에게 최적의 안보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미국의 최우선 국가목표 역시 반드시 그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미국이 원하는 중동은 단순할 가능성이 높다.

조용한 중동이다.

호르무즈가 열려 있고,

석유가 정상적으로 거래되고,

이스라엘이 존립하며,

이란이 미국을 직접 위협하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국가들이 안정되고,

미군이 대규모 전쟁에 다시 들어갈 필요가 없는 중동이다.

반면 이스라엘이 원하는 중동은 그것보다 훨씬 까다롭다.

단순히 조용한 중동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지역강국이 없는 중동을 원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미국은 균형을 원하지만 이스라엘은 우위를 원한다.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갈라지는 지점이다.

최근 이스라엘이 가자뿐 아니라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공격적인 군사행동을 이어가는 것도 이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보인다.

단순히 네타냐후의 국내정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더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미국이 아직 가까이 있을 때 주변의 위협을 최대한 제거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란을 약화시킨다.

헤즈볼라의 재건을 막는다.

하마스의 군사력을 억제한다.

그리고 이란이 빠져나간 공간에 튀르키예라는 또 다른 지역강국이 들어오는 것도 막는다.

겉으로 보면 팽창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미국의 퇴각에 대비한 전진일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또 다른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불안해서 더 공격적으로 움직이면 주변국들도 불안해진다.

튀르키예가 움직인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움직인다.

파키스탄이 움직인다.

걸프 국가들이 미국 이외의 안보관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각국이 군비를 늘리고 새로운 군사협력을 만든다.

그러면 중동은 미국 하나가 압도적으로 관리하던 공간에서 여러 지역강국이 서로 견제하는 다극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그 세계는 이스라엘에게 반드시 유리하지 않다.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매우 강한 국가다.

그러나 인구 1천만 명 남짓의 국가가 튀르키예,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처럼 훨씬 큰 국가들이 각자의 군사력과 동맹망을 구축하는 지역에서 영원히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 차이를 지금까지 메워준 것이 미국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집회에서 성조기가 등장하는 장면은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상징적이다.

그들이 성조기를 드는 이유는 미국이 실제로 자신들의 문제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를 압박할 수 있고,

무기를 공급할 수도 있고,

협상을 중재할 수도 있고,

전쟁의 방향 자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성조기가 아무 의미 없는 천 조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그 국기가 상징하는 힘은 지금도 압도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착각하기 쉽다.

미국이 강하다는 것과 그 힘을 나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미국은 자신이 필요하면 움직인다.

필요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어제까지 중요했던 동맹이라도 오늘 미국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면 부담해야 할 몫이 커진다.

아프가니스탄이 그랬다.

유럽도 더 많은 방위비를 요구받고 있다.

중동 국가들도 미국이 영원히 모든 안보비용을 대신 부담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미국의 배신이 아니다.

미국의 계산이 바뀌는 것이다.

배신은 감정의 언어다.

국제정치는 계산의 언어에 가깝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싫어하게 될 필요도 없다.

이스라엘보다 중국이 중요해지면 된다.

미국이 중동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중동에 투입하는 자원의 한계선을 조금씩 낮추기만 하면 된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이렇게 말하면 충분하다.

“이스라엘의 생존은 도와주겠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원하는 중동까지 만들어주지는 않겠다.”

그 순간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미국이라는 거대한 후방에 맡겼던 비용을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요격미사일도 더 만들어야 한다.

전투기와 탄약도 더 확보해야 한다.

이란을 견제해야 한다.

튀르키예도 봐야 한다.

주변 아랍국가와의 관계도 관리해야 한다.

외교적 고립도 피해야 한다.

결국 군사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늘어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성조기 집회의 한계가 드러난다.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에게 호소하는 것은 가능하다.

오랜 동맹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와 가치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과거 미국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전략이 바뀌는 순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국에게 중요한 질문은 언제나 결국 비슷하다.

이것이 지금 미국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미국은 봉황처럼 움직인다.

아무 곳에나 내려앉지 않는다.

자신에게 필요한 곳에 내려앉고, 더 중요한 곳이 생기면 다시 날아간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전략적 위험은 미국이라는 봉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봉황이 여전히 가장 강력한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무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진짜 질문은 미국인을 얼마나 친이스라엘로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다.

미국이 중동에서 사용하는 자원을 줄이는 세계에서 이스라엘이 혼자 얼마만큼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이다.

성조기 집회는 미국의 관심을 끌 수 있다.

미국 정치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전략의 방향까지 영원히 붙잡아둘 수는 없다.

동맹은 사랑이 아니다.

패권도 자선사업이 아니다.

미국은 자신에게 이익이 있기 때문에 동맹을 만들고 세계질서를 유지해왔다.

그 이익과 비용의 계산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진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앞으로 의지해야 할 것은 성조기의 숫자가 아니다.

미국이 떠나기 어렵게 만드는 자신의 전략적 가치이거나,

미국의 지원이 줄어들어도 감당할 수 있는 자신의 힘이거나,

결국에는 주변국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질서일 것이다.

성조기를 아무리 흔들어도 봉황을 붙잡아둘 수는 없다.

봉황이 머무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