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은 미납 고객이 아니다, 미국이 잊고 있는 패권의 진짜 대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전투 중단을 포함한 휴전안을 내놓았지만 트럼프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보도되면서, 미국이 왜 전쟁을 계속하려는지와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질서와 동맹망, 해상교통로를 유지해왔지만 그것은 일방적인 봉사가 아니라 달러의 국제적 지위와 금융·군사적 영향력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이미 받아온 체제였다. 그런데 과거의 역할을 미수금처럼 여기며 동맹에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동시에, 미국이 선택한 이란전쟁으로 발생한 유가와 물가 상승까지 동맹국이 부담하게 된다면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설득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패권의 힘은 단순히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필요할 때 다른 나라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움직이게 만드는 데 있으며, 그 점에서 지금의 미국은 힘은 충분히 강하지만 그 힘을 오래 유지하는 법에서는 아직 조금 덜 성숙해 보인다.
휴전안을 거부한 미국, 비용은 누가 내는가
이란이 출구를 내밀었다.
호르무즈 해협을 7일 안에 다시 열고 역내 전투를 멈추는 방안을 미국에 전달했다. 미국이 이란 항구에 대한 봉쇄를 풀고 군사적 압박을 완화하면 더 넓은 협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9월 26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제안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당국자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란이 미국의 핵 관련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지 회의적으로 보고 있으며, 참모들에게 11월 중간선거 이후 이란에 대한 폭격이 다시 시작될 가능성을 예상한다는 뜻도 밝혔다고 한다.
다만 아직 미국의 공식 거부 발표가 나온 것은 아니다. Reuters는 같은 날 이란이 미국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므로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트럼프가 이 휴전안을 거부한 것으로 보도됐다는 데까지다.
그럼에도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미국은 무엇을 더 얻으려고 하는가.
그리고 그때까지 발생하는 비용은 누가 내는가.
이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핵 프로그램과 미사일, 제재, 이란의 역내 영향력 같은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미국이 제안의 조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란이 제시한 것은 적어도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고 전투를 일시적으로 멈춰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출구였다. 7개월째 이어진 전쟁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 가운데 하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 출구의 경제적 가치는 작지 않다. Reuters는 이란전쟁이 호르무즈의 원유 흐름을 방해하면서 세계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바로 여기에서 이 전쟁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동맹국들은 이미 비용을 내고 있다.
유가는 올라갔다.
운송비도 올라갔다.
에너지 수입국의 물가 부담도 커졌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미국의 동맹국 국민은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전쟁의 비용을 주유소와 전기요금과 물가를 통해 조금씩 부담하고 있다.
9월 22일에도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 부근에서 움직였다. Reuters는 이란과의 평화협상이 중간선거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공급불안을 키우며 유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동맹국에 적어도 두 가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이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가면 끝나는가.
핵무기 개발을 막으면 끝나는가.
미사일 전력을 더 파괴해야 하는가.
이란 해군을 무력화해야 하는가.
후티 같은 이란 연계 세력까지 약화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이란이 미국이 원하는 새로운 지역질서를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하는 것인가.
목표가 계속 넓어진다면 전쟁에는 분명한 종료선이 없어진다.
그리고 종료선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비용을 다른 나라에게 함께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순간 동맹의 문제는 달라진다.
미국이 오랫동안 세계질서를 유지해온 것은 사실이다.
해상교통로를 지켰고 동맹국의 안보를 보장했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은 금융시장을 제공했다. 위기가 발생하면 달러 유동성은 세계경제의 마지막 안전판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봉사활동이 아니었다.
미국 역시 그 체제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달러는 세계의 중심 통화가 됐고 미국 금융시장은 세계 자본이 모이는 장소가 됐다. 미국 정부와 기업은 달러의 국제적 지위와 거대한 금융시장이 주는 자금조달상의 이점을 누렸다.
미국 중심의 질서는 원래 일방적인 자선사업이 아니었다.
미국도 이익을 얻었고 다른 국가도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일부 대외정책 언어를 듣다 보면 가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너희를 지켜줬다.
우리가 항로를 지켰다.
우리가 세계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니 이제 너희가 더 내야 한다.
동맹국이 더 많은 방위비를 부담해야 하는지는 논의할 수 있다.
미국과 동맹국 사이의 비용분담이 공정했는지도 따질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이 지불한 비용을 전부 일종의 미수금처럼 생각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그동안 미국이 받은 것은 장부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달러가 세계를 돌면서 미국이 얻은 금융상의 편익은 무엇이었는가.
미국 기업이 접근할 수 있었던 세계시장의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세계 자금이 미국 국채와 금융시장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편익은 무엇이었는가.
전 세계의 동맹과 기지를 통해 확보한 군사적·외교적 영향력은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이미 받은 것은 잊어버리고 자신이 준 것만 기억하면 관계는 이상해진다.
그리고 이란전쟁은 그 모순을 꽤 선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벌인다.
동맹국은 높은 에너지 가격이라는 비용을 같이 부담한다.
그러면서 미국은 동맹국에 더 큰 안보비용을 요구한다.
그런데 정작 전쟁을 확대할 상황이 되자 미국 역시 비용을 계산하기 시작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후티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직접 타격에 동의하지 않고 정보와 표적 지원 등에 머물렀다고 Reuters는 보도했다. 이란전쟁에 이미 상당한 전력이 투입된 상황에서 또 하나의 전선을 여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중요하다.
사우디의 안정과 홍해 항로의 안전은 미국에게도 경제적·전략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도 미국은 전선 확대의 가격을 따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란도 그것을 본다.
중국도 그것을 본다.
트럼프가 아무리 강한 말을 해도 상대국들은 말만 듣지 않는다.
미군이 어느 곳에서는 공격하고 어느 곳에서는 멈추는지 본다.
탄약이 얼마나 소모되는지 본다.
유가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본다.
미국 국내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다.
중간선거가 언제인지도 안다.
그런 상황에서 시진핑이 워싱턴에 왔다.
트럼프는 시진핑이 도착한 앤드루스 합동기지까지 직접 나가 그를 맞았다.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그곳에서 직접 영접한 것은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교황 프란치스코를 맞은 이후 11년 만이었다고 Reuters는 전했다.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에는 무역과 기술, 대만뿐 아니라 이란도 포함됐다.
왜 중국인가.
중국이 미국보다 강해서가 아니다.
중국군이 이란 편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중국이 이란에 전쟁을 끝내라고 명령할 수 있어서도 아니다.
훨씬 단순하다.
중국은 이란이 버틸 수 있는 비용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가장 중요한 구매자다. 중국이 원유 구매를 계속하고 결제와 상품거래의 통로가 유지되면 이란이 미국의 압박을 견디는 비용은 낮아진다.
반대로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2차 제재를 더 두려워하기 시작하고 원유구매와 금융통로가 좁아지면 이란이 버틸 수 있는 시간도 달라진다.
중국이 이란을 굴복시킬 필요는 없다.
이란의 계산기를 조금만 바꿀 수 있으면 된다.
그래서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중국과 5년, 10년을 경쟁할 수 있다.
반도체도 있고 AI도 있고 대만해협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라는 대통령에게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
11월 3일에는 중간선거가 있다.
전쟁이 길어지고 유가와 생활비 문제가 커질수록 대통령의 정치적 시간은 빠르게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시진핑에게 반드시 미국을 이길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이미 지불하고 있는 전쟁의 가격을 조금 낮춰줄 수 있으면 된다.
여기에서 미국의 세계질서 이야기가 다시 돌아온다.
패권국이 정말 강한 이유는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필요할 때 다른 나라들이 함께 움직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항상 돈을 주거나 위협하지 않아도 말이다.
동맹국이 미국을 돕고 금융기관이 미국의 제재에 협조하고 기업들이 미국이 만든 규칙을 따르고 정부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머물러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면서 받아온 가장 큰 보상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미국이 그 과거를 이렇게 이해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너희를 지켜줬으니 이제 갚아라.
조금 철이 덜 든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해준 것만 기억한다.
내가 밥을 샀다.
내가 도와줬다.
내가 양보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성숙해지면 관계에는 다른 장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 역시 받은 것이 있다.
상대가 내 곁에 머물러준 것에도 가치가 있다.
그 사람이 필요할 때 내 편에 서주는 것에도 가격이 있다.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과거의 영수증을 계속 꺼내는 것보다 앞으로도 그 관계 안에 남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라는 믿음을 유지하는 편이 중요하다.
패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동맹이 유지된 것은 미국의 군사력이 강해서만이 아니다.
미국 중심 질서에 남아 있는 것이 나가는 것보다 낫다고 많은 국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과거에 제공한 질서를 채권처럼 생각하면서 현재 자신이 선택한 전쟁의 비용까지 동맹에게 떠넘긴다면 그 계산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미국이 당장 받아들일 필요는 없더라도 호르무즈를 다시 열고 전투를 멈출 수 있는 제안이 나왔는데 그것을 거부한 것으로 보도된 지금은 더 그렇다.
전쟁을 계속할 권한과 능력은 미국에 있다.
더 좋은 조건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란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 선택에는 나름의 전략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을 계속한다면 한 가지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비용이다.
그 비용은 미 국방예산에서만 나가지 않는다.
사우디가 낸다.
유럽이 낸다.
한국과 일본 같은 에너지 수입국도 낸다.
세계의 소비자들이 낸다.
그렇다면 미국은 최소한 왜 그 비용을 계속 부담해야 하는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힘이 있다는 것과 다른 사람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패권국일수록 더 그렇다.
경쟁국은 원래 미국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정말 위험한 것은 동맹국까지 미국의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중국이 미국을 대신할 완성된 세계질서를 만들 필요도 없다.
달러를 내일 당장 무너뜨릴 필요도 없다.
그저 다른 나라들이 하나의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된다.
미국의 모든 선택에 우리가 함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그 질문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 패권국의 비용은 훨씬 커진다.
지금 이란이 제시한 휴전안은 완벽한 평화안이 아닐 것이다.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르무즈를 열고 전투를 멈춰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 다음 질문에는 미국이 답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얻을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인가.
그리고 그때까지 누가 비용을 낼 것인가.
세계질서를 유지했던 미국은 이미 그 질서의 중심에 서는 것으로 상당한 대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그것을 잊고 과거의 계산서를 다시 내밀면서 현재의 전쟁비용까지 다른 나라에게 함께 부담시키려 한다면, 미국이 잃게 되는 것은 몇십억 달러가 아닐 수 있다.
자신이 필요할 때 다른 나라가 자발적으로 함께 움직여주는 힘.
패권국에게는 어쩌면 그것이 달러보다도 귀한 자산이다.
그리고 그런 자산은 힘으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설득으로 쌓인다.
강대국도 그 사실을 잊는 순간이 있다.
힘은 충분히 컸는데, 그 힘을 어떻게 오래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조금 덜 배운 것처럼 보이는 순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