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아파트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30억 아파트를 산 직장인의 사연을 ‘현명한 선택 끝에 얻은 성공’처럼 구성한 기사는, 부동산 가격을 삶의 성취와 동일시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그대로 드러낸다. 실제로는 배우자의 기존 자산과 부모 세대의 지원, 향후 금리와 자산가격 변동 위험까지 함께 봐야 하지만, 기사는 이런 복잡한 맥락을 지우고 30억 아파트를 이야기의 최종 보상처럼 제시한다. 그러나 집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그 선택이 옳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비싼 집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의 성공을 증명할 수도 없다. 30억 아파트는 성공의 증명서도 아니고 인생의 결말도 아니다.
한 부동산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결혼 당시 3억원을 가지고 있던 직장인이 6년 만에 30억원짜리 아파트의 공동명의자가 됐다는 이야기다.
내용은 꽤 극적이다. 남편에게는 이미 20억원 상당의 아파트가 있었지만 대출도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모은 돈을 보탤지, 그만큼의 지분을 요구할지 고민한다. 친정 부모는 계산하지 말고 남편을 믿으라고 조언한다. 시부모는 그런 며느리를 좋게 본다. 자동차를 사주고, 아이가 생기자 더 넓은 집으로 옮겨주겠다고 한다. 아내는 소비하지 않고 남겨둔 돈을 다시 보탠다. 그리고 마침내 부부는 30억원짜리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갖게 된다.
이 정도면 부동산 기사라기보다 아침드라마에 가깝다.
착하고 현명하게 처신한 주인공이 여러 시험을 통과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보상을 받는다. 그 보상이 30억원짜리 아파트다. 기사에 소개된 네티즌 반응까지도 “계산적으로 굴지 않은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는 쪽으로 배열돼 있다.
사실 이런 가족사가 행복했는지는 당사자만 알 것이다. 좋은 시부모를 만나고 가족 간 신뢰를 쌓았다는 점은 분명 좋은 일일 수 있다. 문제는 기사가 그 행복의 증거로 무엇을 내세우느냐에 있다.
30억원짜리 아파트다.
기사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모든 선택은 그 집을 향해 수렴한다. 절약도, 양보도, 부모의 조언도, 가족 간 신뢰도 결국 “3억원 들고 6년 만에 30억원 자가 등기”라는 한 문장으로 결산된다.
하지만 30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다는 사실이 왜 성공의 증명이 되어야 할까.
더구나 지금은 금리를 잊고 부동산 가격만 바라보기에는 만만한 시기가 아니다. 주요국의 통화정책이 다시 긴축 쪽으로 움직인다면 장기자산의 가격과 자금조달 비용은 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30억원짜리 집을 보유했다는 것은 30억원짜리 성공을 손에 넣었다는 뜻이 아니라, 30억원 규모의 자산가격 변동과 금융환경의 변화에 노출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대출이 거의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 사례의 핵심은 뛰어난 재테크라기보다 이미 20억원 상당의 주택을 보유한 배우자와 시부모의 상당한 자산 지원에 있다. 실제 기사에도 결혼 당시 남편이 20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고, 시부모가 주택담보대출을 해결해주겠다고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반대로 대출을 많이 이용했다면 더욱 이상하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투자에 대해 언론이 먼저 성공 판정을 내려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집을 샀을 때 투자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날부터 금리를 감당해야 하고, 세금을 내야 하고, 가격 변동을 견뎌야 한다. 소득이 줄어들 수도 있고 더 좋은 투자기회가 나타날 수도 있다. 5년 뒤 그 집이 40억원이 될 수도 있고 25억원이 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재무상태가 어떻게 변할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기사에는 이상할 만큼 시간이 없다.
등기를 치는 순간 시계가 멈춘다.
집을 사기 전까지의 선택은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받지만, 집을 산 이후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새 아파트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오히려 이 대목이 우리 사회가 부동산을 바라보는 방식을 꽤 정확하게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집은 원래 삶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집의 가격이 사람의 성취를 평가하는 점수가 됐다. 10억원짜리 집을 가진 사람보다 30억원짜리 집을 가진 사람이 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고, 비싼 집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과거의 선택까지 현명했던 것으로 재해석된다.
그러다 보니 언론도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대신 아파트 가격표를 보여준다.
얼마를 벌었는지보다 얼마짜리 집에 사는지가 중요하고, 어떤 일을 해냈는지보다 어느 지역의 아파트를 샀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집값이 높을수록 이야기의 결말도 더 성공적인 것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자산의 가격과 사람의 가치는 같은 것이 아니다.
좋은 가족관계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소비를 절제하고 자신의 형편에 맞게 자산을 관리했다면 그것 역시 평가할 만한 일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산을 물려주고 싶어 했다면 그것도 그 가족의 선택이다.
굳이 그 모든 삶의 결과를 30억원이라는 숫자로 환산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아직 그 집을 산 뒤의 삶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30억 아파트는 성공의 증명서도 아니고 인생의 결말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