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불황이 아니라 호황기에 만들어진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헤지펀드의 공격이나 금융당국의 일시적 실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였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로 대표되는 3저 호황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수출 확대와 고성장을 안겼지만, 동시에 과잉투자와 과도한 부채, 단기 외채 의존을 키웠다. 이후 엔저와 중국의 가격 경쟁력 강화로 수출 환경이 악화되자 기업 부실과 경상수지 적자가 드러났고, 감독 체계가 미비한 상태에서 이뤄진 성급한 자본시장 개방과 고정환율제는 위기를 더욱 증폭시켰다. 특히 단기 외화를 빌려 장기 설비와 부동산에 투자한 만기 불일치, 환위험을 회피하지 않은 외화부채 구조는 자본 유출과 환율 급등이 시작되자 기업과 금융기관을 동시에 무너뜨렸다. 결국 1997년 위기는 대외 경제환경의 반전이 도화선이 되고, 호황기에 누적된 부채와 제도적 취약성이 화약이 되어 폭발한 사건이었으며, 국가적 경제위기의 규모는 외부 충격 자체보다 그 충격을 견딜 내부 구조의 내구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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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저 호황의 종말과 제도적 무방비가 빚어낸 합작품
1997년 동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는 흔히 국제 투기자본의 공격이나 금융당국의 판단 착오로 설명된다. 그러나 헤지펀드의 공격만으로 한 지역의 경제가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는 없다. 당국의 몇 차례 정책 실패만으로 외환시장이 순식간에 마비되는 것도 아니다.
위기의 본질은 보다 구조적이었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로 대표되는 ‘3저 호황’이 막을 내리면서 대외 경제환경이 급격히 바뀌었고, 그 충격이 준비되지 않은 자본시장 개방과 왜곡된 금융 규제, 취약한 외채 구조를 정면으로 때렸다.
외부의 충격이 도화선이었다면, 내부의 제도적 취약성은 이미 가득 쌓여 있던 화약이었다. 1997년 위기는 이 둘이 결합해 만들어낸 거대한 합작품이었다.
호황은 어떻게 위험을 가렸는가
1980년대 중후반 동아시아 경제는 이른바 3저 호황의 전성기를 누렸다. 국제유가는 낮았고 금리 부담은 줄었으며,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일본과의 가격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수출은 빠르게 증가했고 설비투자가 확대됐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은 성장의 상징이 됐다. 문제는 호황이 장기화되면서 성공의 원인이 기업의 경쟁력과 경영 능력에만 있다는 착각이 퍼졌다는 점이다.
“투자하면 팔린다”는 믿음 아래 기업들은 외채를 끌어다 경쟁적으로 생산설비를 늘렸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종에 투자가 집중되면서 중복·과잉투자가 누적됐다. 한국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400~500%에 이르기도 했지만, 매출과 수출이 계속 늘어나는 동안 높은 부채는 위험이 아니라 성장의 수단처럼 보였다.
그러나 밀물이 모든 암초를 가려주듯, 호황은 취약한 재무구조와 낮은 수익성을 감추고 있었을 뿐이었다.
흐름이 바뀐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1995년 미국과 일본 등이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정책 공조에 나서면서 이른바 ‘역플라자’ 국면이 시작됐다. 엔저가 진행되자 동아시아 제조업은 일본 기업과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해졌다.
여기에 1994년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효과까지 더해졌다. 고부가가치 시장에서는 일본과 경쟁해야 했고, 저가 제조업 시장에서는 중국의 추격을 받아야 했다. 동아시아 수출기업들은 위아래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자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됐고, 호황기에 쌓아 올린 설비와 부채의 부담이 드러났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이 늘어났다. 호황의 종말은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었다. 성장기 동안 가려져 있던 부실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위험한 자본은 왜 가장 쉽게 들어왔는가
외부 환경의 반전만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각국의 금융제도와 외환관리 체계가 충격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급하고 기형적인 자본시장 개방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OECD 가입과 금융 선진화라는 목표 아래 자본시장을 빠르게 개방했다. 그러나 금융감독 체계와 외환 건전성 규제는 개방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한국의 규제 구조는 역설적이었다. 국내 산업과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장기적인 외국인 직접투자는 비교적 엄격하게 제한하면서도, 금융기관과 기업의 단기 해외차입은 상대적으로 쉽게 허용했다.
위기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어려운 장기자본은 막고, 작은 충격에도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자본은 받아들인 셈이다. 자본시장의 문은 열렸지만 가장 불안정한 형태의 자금이 가장 쉽게 들어오는 구조였다.
금융기관들은 단기 외화를 빌려 국내 기업에 장기로 대출했다. 기업들도 만기가 짧은 해외 자금을 끌어다 회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설비와 부동산에 투자했다. 외화부채의 만기는 짧았지만 투자자산의 회수 기간은 길었다.
이른바 ‘단기 차입·장기 투자’의 만기 불일치가 경제 전반에 누적된 것이다. 평상시에는 신규 차입으로 만기를 연장할 수 있었지만, 해외 채권자가 자금 공급을 중단하는 순간 전체 구조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고정환율이 만든 위험한 착각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여러 동아시아 국가는 자국 통화 가치를 달러에 사실상 연동하는 환율정책을 유지했다. 고정적이거나 예측 가능한 환율은 수출과 투자에 안정성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안정은 환위험이 사라졌다는 착각을 낳았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금리가 낮은 달러화 자금을 대규모로 빌렸다. 상당수 외화부채에는 환헤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달러로 빌린 돈을 자국 통화로 수익을 내는 부동산과 주식, 장기 개발사업에 투입하는 구조였다. 환율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낮은 금리의 혜택만 보였다. 그러나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부채는 자동으로 불어난다. 환율이 20% 떨어지면 기업이 갚아야 할 외화부채의 자국 통화 환산액도 그만큼 증가한다.
정부가 환율을 방어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금융기관과 기업의 위험관리를 약화시켰다. 고정환율제가 시장의 불안을 잠재운 것이 아니라, 위험이 보이지 않도록 덮어두고 있었던 셈이다.
도화선과 화약이 만난 순간
1997년의 비극은 거시경제 환경의 반전과 취약한 금융구조가 만나는 지점에서 폭발했다.
수출 여건이 악화되고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자 기업 부실이 현실화됐다. 한국에서는 한보철강과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의 부도가 이어졌고,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의심이 확산됐다. 태국에서도 부동산과 금융회사의 부실이 쌓이며 바트화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투자자들이 고정환율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자본은 빠르게 빠져나갔다. 각국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환율을 방어했지만, 외환보유액에 비해 단기 외채가 지나치게 많았다. 시장은 정부가 언제까지 환율을 지킬 수 있는지 시험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환율 방어가 무너지자 자국 통화 가치는 급락했다. 그 순간 기업과 은행이 보유한 달러 표시 부채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장기 프로젝트와 부동산에 묶인 자금은 당장 회수할 수 없었지만, 해외 채권자들은 단기차입금의 만기 연장을 거부했다.
외화 유동성 위기는 곧 지급능력의 위기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달러가 부족한 문제처럼 보였지만, 환율 급등으로 부채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과 금융기관의 자산·부채 구조 자체가 무너졌다.
헤지펀드와 국제 투자자들의 공격은 위기의 중요한 촉매였지만 근본 원인은 아니었다. 투기자본은 아무 국가나 공격해 무너뜨리는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경상수지 적자, 부족한 외환보유액, 과도한 단기 외채, 취약한 금융기관, 지속 가능하지 않은 환율제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을 찾아낸다.
공격이 성공했다는 사실은 공격자의 힘뿐 아니라 방어자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위기는 호황기에 만들어진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위기가 불황기에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기의 씨앗은 대부분 호황기에 뿌려진다.
낮은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안정적인 환율, 빠른 수출 증가가 이어질 때 기업과 금융기관은 위험을 과소평가한다. 정부도 성장률이 높은 동안에는 금융 규제와 외환 건전성 강화를 뒤로 미루기 쉽다. 부채는 늘어나지만 자산가격과 매출도 함께 오르기 때문에 취약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환경이 바뀌면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된다. 값싼 자금은 비싼 자금이 되고, 안정적이던 환율은 급변하며, 언제든 연장할 수 있을 것 같던 단기차입은 갑자기 상환 요구로 돌아온다. 호황기에 효율적으로 보였던 구조가 불황기에는 파산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된다.
결국 1997년 위기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3저 호황이라는 우호적인 환경이 위험한 낙관을 낳았고, 그 낙관 속에서 과도한 부채와 중복투자, 단기 외채와 만기 불일치가 누적됐다. 이후 대외 경제환경이 반전되자, 평소에는 가려져 있던 제도적 결함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거시경제의 악화만으로 한 지역의 경제가 붕괴하지는 않는다. 내부의 비효율과 부채 역시 외부 충격이 없다면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 환경의 급변이라는 외풍과 이를 견딜 구조적 내구성의 부재가 만날 때, 기업의 부실은 금융위기로 번지고 금융위기는 국가의 외환위기로 확대된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국가적 위기가 단일한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위기는 대개 외부에서 시작되지만, 그 규모와 깊이는 내부에 무엇이 쌓여 있었는지가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