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씨름

세계화의 종말이 부동산 시장을 바꾸는 이유

세계화는 값싼 노동력과 에너지, 안전한 해상 물류를 바탕으로 물가와 금리를 낮추고 부동산의 레버리지 투자를 가능하게 했지만, 공급망 분절과 물류·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그 시대가 끝나가면서 고물가·고금리가 새로운 질서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때 영끌한 사람들은 집값 하락보다 먼저 원리금과 생활비 상승으로 현금흐름이 막히고, 자산을 가졌지만 직업과 소비, 가족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하는 길을 걷게 된다. 권력투쟁이 한창이던 시대에 감택·반중·배송지가 눈앞의 권력과 이익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본분과 원칙을 지켜 살아남았듯, 부동산 광풍 속에서도 ‘지금 사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공포와 탐욕을 견딘 사람은 수익의 기회를 일부 놓쳤을지언정 삶의 선택권을 지켰다. 탐욕의 잔치가 끝난 뒤 승자가 되는 사람은 가장 많은 것을 차지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판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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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경제를 지배한 가장 강력한 힘은 세계화였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값싼 노동력, 러시아와 중동에서 공급되는 저렴한 에너지, 미국 해군이 사실상 무료로 제공한 해상 교통로의 안전이 결합했다. 기업은 가장 싼 곳에서 생산하고, 가장 빠른 항로를 통해 상품을 운송했다. 재고를 최소화하는 적기생산 방식이 확산됐고, 소비자는 값싼 상품을 누렸다.

세계화는 단순히 무역을 늘린 것이 아니다. 세계 전체의 생산비와 물가를 낮추는 거대한 장치였다.

낮은 물가 덕분에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경기가 흔들릴 때마다 돈을 풀었고, 넘쳐난 유동성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빚을 내서 자산을 사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보상받았다. 부채는 위험이라기보다 자산을 증식시키는 도구로 여겨졌다.

그 시대에는 절제가 어리석어 보였다.

집을 사지 않은 사람은 ‘벼락거지’가 되었고, 대출을 최대한 일으키지 않은 사람은 기회를 놓친 겁쟁이 취급을 받았다. 어제의 가격보다 오늘의 가격이 높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높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들을 지배했다.

그러나 세계화의 조건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전 세계의 항로를 예전처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 홍해와 호르무즈해협 같은 주요 항로에서는 값싼 드론과 미사일만으로도 거대한 상선과 군함을 위협할 수 있다. 배가 항로를 우회하면 운송 기간과 연료비가 늘어나고, 위험 지역을 통과하면 보험료가 오른다.

기업들은 공급 차질에 대비해 재고를 더 쌓아야 한다. 생산기지를 자국이나 우방국으로 옮기는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도 효율보다는 안보를 우선하는 선택이다. 안전은 높아질 수 있지만 비용은 낮아지지 않는다.

세계화의 퇴조는 곧 값싼 생산과 값싼 운송의 종말이다. 물류비, 에너지비, 인건비, 방위비가 동시에 상승하면 물가는 구조적으로 높아진다. 중앙은행은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과거처럼 쉽게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기 어렵다.

세계화의 종말이 물가의 상승이라면, 물가의 상승은 저금리 시대의 종말이다. 그리고 저금리 시대의 종말은 부동산 투기 방식의 종말이다.

영끌은 가격이 아니라 현금흐름에서 무너진다

많은 사람은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져야 영끌이 실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끌한 사람을 먼저 무너뜨리는 것은 자산 가격의 하락이 아니라 현금흐름의 고갈이다.

4억 원을 빌려 한 달에 원리금 200만 원을 내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집값이 아니다. 매달 200만 원을 수십 년 동안 계속 낼 수 있느냐는 문제다.

금리가 낮고 소득이 안정적일 때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생활물가가 오르고, 사업 매출이 줄고, 임금 상승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면 같은 200만 원의 무게가 달라진다. 여기에 우대금리 기간이 끝나거나 대출을 갈아타야 하는 시점이 오면 부담은 더 커진다.

영끌한 사람은 집 한 채를 산 것이 아니다. 미래의 노동소득 상당 부분을 은행에 넘기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상승기에는 집값이 이자를 대신 갚아주는 것처럼 보인다. 자산 가격이 매년 수천만 원씩 오르면 매달 내는 이자는 작은 비용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가격 상승이 멈추는 순간 계산은 달라진다.

이자는 계속 나가는데 자산은 오르지 않는다. 세금과 관리비, 수리비와 공사비도 오른다. 임대수익률이 대출금리를 밑돌면 부동산은 돈을 벌어주는 자산이 아니라 매달 돈을 요구하는 비용 유발 자산이 된다.

그때 영끌한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산 것이 집이 아니라 레버리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격이 조금 떨어졌다고 당장 파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비를 줄이고, 여행과 교육을 포기하고, 가족의 생활 수준을 낮춰야 한다. 직장을 옮기고 싶어도 대출 때문에 움직일 수 없고, 사업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도 원리금 때문에 움츠러든다.

자산을 소유했지만 삶의 선택권은 줄어든다.

영끌의 마지막 단계는 반드시 경매나 파산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더 흔한 결말은 수십 년 동안 삶의 가능성을 이자와 맞바꾸는 것이다.

감택과 반중은 기회를 놓친 사람이었을까

삼국시대 오나라의 감택과 반중은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있었던 인물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황제의 후계자를 둘러싸고 신하와 호족이 편을 갈랐다. 어느 황자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가문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었다. 줄을 잘 서면 벼슬과 권력을 얻을 수 있었지만, 잘못 서면 자신뿐 아니라 일가 전체가 몰락했다.

감택과 반중에게도 유혹은 있었을 것이다.

어느 편에 서면 더 높은 관직을 얻을 수 있다는 제안,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모든 기회를 잃는다는 압박, 다른 사람들은 이미 줄을 섰다는 불안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감택은 후계자 싸움에 깊이 들어가기보다 예법과 명분을 강조했다. 반중은 당파를 만들기보다 원칙과 직분을 지켰다. 그들은 권력자가 될 능력이 없어서 권력을 멀리한 것이 아니다. 권력의 단맛 뒤에 숨어 있는 위험을 보았기 때문에 거리를 두었다.

후대의 역사가 배송지도 비슷한 인물로 언급된다. 권력투쟁에 뛰어들기보다 기록과 학문이라는 자신의 본분에 머물렀다. 권력자에게 정치적 경쟁자로 의심받지 않았고, 특정 세력의 몰락에 함께 휩쓸리지도 않았다.

이들의 삶을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권력이 눈앞에 있을 때 권력을 탐하지 않는 것,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려갈 때 멈추는 것, 기회를 놓치는 것처럼 보이는 선택을 감수하는 것은 상당한 자기 통제력을 요구한다.

영끌 광풍도 하나의 후계자 전쟁이었다

부동산 상승기의 영끌 열풍은 오나라의 후계자 다툼과 닮아 있다.

“지금 줄을 서지 않으면 새 시대에서 밀려난다.”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평생 살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산을 늘리고 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 가난해진다.”

권력투쟁에 뛰어든 신하들과 영끌에 뛰어든 사람들을 움직인 말은 본질적으로 비슷했다.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욕망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몰락한다는 공포가 동시에 작용했다.

모든 영끌이 탐욕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가족의 주거를 마련하려는 사람도 있었고, 전셋값 상승을 피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집을 사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대출을 일으키며, 집값 상승이 자신의 노동소득을 영원히 앞지를 것이라고 믿은 순간부터 주거는 투기가 되었다.

사람은 탐욕을 탐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을 기회라고 부르고,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고 부르며,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고 합리화한다. 상승기에는 그러한 설명이 모두 사실처럼 보인다. 승자들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이다.

권력투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선택한 황자가 권력을 잡는 동안에는 줄을 선 사람이 현명해 보인다. 관직을 얻고 재산을 늘리며 경쟁자를 누른다. 그러나 권력 구도가 바뀌는 순간 그동안 얻은 모든 것이 숙청의 근거가 된다.

레버리지도 상승기에는 부를 만드는 도구지만, 금리가 오르는 순간 채무자를 붙잡는 족쇄가 된다.

진정한 승자는 가장 많이 차지한 사람이 아니다

감택과 반중, 배송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중립이 항상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핵심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의 판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들은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권력을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의 대가를 알았기 때문이다.

영끌 광풍에 휩쓸리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승기에는 상대적 박탈감을 견뎌야 했다. 집을 산 친구가 수억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어야 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겁쟁이나 패배자로 평가하는 시간도 견뎌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지킨 것은 단순한 현금이 아니었다.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흔들릴 때 직장을 옮길 수 있는 자유, 사업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 가족의 생활을 원리금에 종속시키지 않을 권리를 지킨 것이다. 영끌에 휩쓸리지 않는 태도와 권력투쟁에서 욕심을 멀리한 태도는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탐욕의 시대에는 절제가 패배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평가도 바뀐다. 세계화가 후퇴하고 물가와 금리가 구조적으로 상승하는 시대에는, 가장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강하다.

권력의 잔치가 끝난 뒤 살아남은 사람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올라가서는 안 될 자리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부동산의 잔치가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장 비싼 집을 산 사람이 아니라, 욕망과 공포가 동시에 밀려올 때 자신의 삶을 담보로 내놓지 않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선택권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