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가능한 이란은 사라지고, ‘버티는 이란’이 남았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장과 해협 통제력을 억제해 관리 가능한 질서로 복귀시키려 했지만, 반복된 공습은 이란의 계산을 바꾸지 못한 채 혁명수비대의 영향력과 내부 결속을 오히려 강화했다. 이란은 미국을 군사적으로 이길 필요 없이 호르무즈와 홍해의 긴장을 조절하고 미사일·드론·대리세력을 활용해 미국의 전쟁 비용을 높이면 된다. 반면 미국은 공격을 멈추면 패배로 보이고 계속하면 유가 상승, 요격미사일 소모, 동맹국 불안과 국내 정치 부담이 커지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실질적 무력화를 원하지만 미국은 장기전을 감당하기 어렵고, 중국은 이란의 붕괴와 원유 공급망의 완전한 마비를 모두 피하면서 미국이 중동에 묶이는 상황에서 이익을 얻고 있다. 결국 이번 대결의 승패는 파괴력보다 누가 더 오래 비용을 견디느냐에 달렸으며, 이란을 관리하려던 미국의 전쟁은 미국 스스로 감당 가능한 출구를 찾는 전쟁으로 바뀌고 있다.
- 작성자
- 들배지기
- 글 성격
- 분석
- 문서 상태
- 현재 유효
- 공개일
- 수정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홍해까지 번진 충돌…군사력보다 인내력이 중요해진 미·이란 대결
미국과 이란이 다시 미사일과 공습을 주고받고 있다. 미국은 혁명수비대 시설을 공격하고, 이란은 미군기지와 걸프 지역의 목표물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항은 회복되지 않았고, 예멘 후티의 공격으로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불안해졌다. 7월 30일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90달러 안팎에서 움직였다.
지난 6월 체결된 미국·이란 양해각서는 이런 상황을 끝낼 출구처럼 보였다. 양측은 군사행동을 멈추고 호르무즈 해협을 상업선에 개방하기로 했다. 그러나 핵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제재 해제 같은 핵심 쟁점은 뒤로 미룬 임시합의였다. 합의는 전쟁의 원인을 해소하기보다 당장의 유가와 군사적 부담을 낮추기 위한 휴전에 가까웠다.
결국 충돌은 해협의 통항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관리할 것인지를 두고 다시 시작됐다. 미국은 호르무즈의 자유통항을 요구했지만, 이란은 자국이 정한 신고 절차와 항로를 통해 해협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받으려 했다. 양측 모두 합의를 지켰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모호한 문구가 잠시 전쟁을 멈췄지만, 오래된 전략적 충돌까지 해결하지는 못했다. 6월 말 한 차례 봉합됐던 갈등은 7월 들어 다시 공습과 보복의 악순환으로 돌아갔다.
미국이 원했던 것은 이란의 완전한 파괴가 아니었다
미국의 행동을 종합하면 목표는 이란을 없애는 것보다 관리 가능한 상태로 되돌리는 데 가까웠다.
이란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농축 활동을 제한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열며, 이란산 원유와 해외자금이 미국이 추적할 수 있는 금융망 안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정권교체가 성공한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에 가장 유리하겠지만, 이란 같은 대국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려면 대규모 지상군과 장기간의 점령이 필요하다. 미국은 그 비용을 감수할 의사가 없었다.
문제는 군사적 압박으로 이란을 협상 가능한 상태로 만들겠다는 계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습은 군사시설을 파괴할 수 있지만, 이란이 탄도미사일과 호르무즈 통제권을 포기하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공격을 중단하면 미국이 이란의 도전을 용인한 것처럼 보이고, 공격을 계속하면 유가와 군수품 소모, 미군 피해와 국내 정치 부담이 커진다.
미국에는 여전히 이란을 타격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군사적 우위가 원하는 정치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선택지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란은 미국을 이길 필요가 없다
이란은 재래식 군사력으로 미국을 이길 수 없다. 공군력과 정보자산, 정밀타격 능력과 군수 생산력에서 격차가 크다. 그러나 이란의 전략은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이란에는 미국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탄도미사일은 열세인 공군력을 보완하고, 드론과 무장세력은 직접적인 전면전을 피하면서 미국과 동맹국의 비용을 높인다. 호르무즈 해협은 상시 봉쇄하기보다 언제든 봉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편이 유리하다. 선박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고 항로와 신고 절차를 요구하면 세계 경제를 완전히 마비시키지 않으면서도 유가와 해상보험료를 움직일 수 있다.
전쟁의 범위도 호르무즈를 넘어섰다. 이란과 연계된 후티는 사우디아라비아 선박과 홍해 연안의 석유시설을 공격하며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두 번째 병목지대로 만들었다. 사우디 원유를 실은 유조선들이 항로를 바꾸거나 되돌아가면서, 호르무즈를 피해 홍해로 원유를 수송하던 우회전략도 흔들리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와 홍해의 통항을 완전히 끊으면 미국의 전면적인 보복을 부를 수 있다. 반대로 모두 열어주면 가장 강력한 협상카드를 잃는다. 제한적으로 긴장을 높이고 낮추는 회색지대 전략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이란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다.
외부 공격은 이란 체제를 약화시키지 못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군사적 충격이 이란 내부의 균열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나타난 변화는 반대에 가깝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란의 권력은 성직자와 민간 정치인보다 혁명수비대와 국가안보기구에 더욱 집중됐다. 최고지도자가 형식적 정점에 있지만, 실질적인 군사·외교 전략은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결정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압박에도 체제 내부의 중대한 분열이나 항복 조짐은 나타나지 않았다.
공격이 거세질수록 혁명수비대는 국가를 방어하는 조직으로서 더 큰 정당성을 얻는다. 경제난이나 정치적 불만도 전쟁 중에는 외부의 위협에 맞선 내부 결속 논리에 밀릴 수 있다.
미국이 약화시키려 했던 조직이 오히려 전쟁을 통해 이란 국가운영의 중심으로 올라선 셈이다. 이는 향후 협상도 더 어렵게 만든다. 협상으로 경제적 실익을 얻으려는 세력보다 미사일과 해협 통제권을 체제 생존의 조건으로 보는 세력이 더 큰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전술적 성공이 미국의 전략적 성공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사찰과 제재로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핵시설뿐 아니라 탄도미사일과 드론, 혁명수비대와 지역 무장세력까지 실질적으로 약화시켜야 안보위협이 사라진다는 입장이다.
미국도 이란의 핵무장은 막으려 하지만, 이스라엘과 같은 수준의 장기전까지 원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유가와 미군 피해, 무기 재고와 국내 여론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이 다시 전력을 회복할 가능성을 더 큰 위험으로 평가한다.
이 때문에 이란의 시설을 파괴하는 전술적 성과가 쌓일수록 미국과 이스라엘의 목표가 일치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워진다. 이스라엘은 추가 공격을 통해 위협을 최대한 제거하려 하지만, 미국에는 전쟁을 끝내고 비용을 줄여야 할 유인이 점점 커진다. 양국 정상은 최근에도 협상과 추가 군사행동을 포함한 선택지를 함께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어느 수준에서 전쟁을 끝낼지에 대해서는 긴장이 남아 있다.
미국의 군사력은 강하지만 무한하지 않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막으려면 값비싼 요격미사일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 미국의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재고는 1천 발 아래로, 사드 요격미사일은 약 250발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육군이 최대 586억 달러 규모의 패트리엇 장기생산 계약을 체결한 것도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누적된 재고 부담 때문이다. 생산능력을 크게 확대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이란 전선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패트리엇과 사드, 순항미사일과 정밀유도무기는 중국과의 서태평양 충돌에 대비할 때도 필요하다. 중동에서 소모되는 무기가 많을수록 미국이 다른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적 여력은 줄어든다.
이란은 미국보다 약하지만, 미국이 이란만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활용한다. 미국은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를 동시에 계산해야 한다. 반면 이란은 미국의 다른 부담까지 자신의 억지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중국은 중재자가 아니라 선택적인 수혜자다
걸프 국가들은 중국이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해 전쟁을 완화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원유 고객인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국가들의 중요한 교역상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중동 안보를 책임질 의사가 크지 않다. 공개적으로는 휴전과 대화를 요구하면서도 이란을 직접 압박하지 않고, 중국 선박과 원유 공급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협의를 추진하는 데 집중한다. 중국은 이란이 완전히 붕괴하는 것도, 호르무즈와 홍해가 장기간 폐쇄돼 유가가 폭등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가장 유리한 상황은 이란이 미국을 계속 중동에 묶어두되 중국의 에너지 공급은 유지되는 상태다.
미국의 중동 부담이 늘어나면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시간을 벌 수 있다. 동시에 중국은 달러 제재망 밖의 원유 거래와 자국 선박에 대한 예외적 통항을 통해 미국 중심 질서의 틈을 넓힐 수 있다.
중국이 전쟁을 끝낼 결정적 중재자로 나서기보다, 불안정한 질서 속에서 자신만의 안전한 거래통로를 만들려는 이유다.
이란 핵을 막는 전쟁이 중동의 핵 경쟁을 부른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체결한 민간 원자력 협정은 이번 전쟁의 또 다른 모순을 보여준다.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핵무기 개발 가능성과 연결해 제한하려 한다. 그러나 사우디와의 협정은 사우디가 미국 기술로 원전을 건설하고 자국 내에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란에 요구했던 국제원자력기구의 추가적인 불시사찰 의무도 사우디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동맹국인 사우디의 핵기술은 관리할 수 있지만 적대국인 이란의 핵기술은 관리할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이 보편적인 핵 비확산 원칙보다 동맹과 적을 구분해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고 반박할 수 있게 됐다.
사우디가 농축 능력을 확보하면 다른 걸프 국가와 튀르키예도 같은 권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이란의 핵능력을 제거하기 위해 시작된 전쟁이 오히려 중동 전체의 잠재적 핵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의 무게중심은 화력에서 시간으로 이동했다
미국은 앞으로도 이란의 군사시설을 파괴할 수 있다. 이스라엘 역시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 혁명수비대 지휘부를 계속 공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시설 파괴가 곧바로 이란의 항복이나 체제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란의 경제와 기반시설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동시에 미국도 유가와 군수품, 미군 피해와 국내 정치적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걸프 국가들은 에너지시설과 담수화시설이 공격받을 가능성을 걱정하고, 중국은 자국의 원유 수송로를 별도로 확보하려 한다.
현재의 승패는 어느 쪽이 더 강한 무기를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어느 쪽이 상대보다 더 오래 비용을 견딜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미국은 이란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을 이길 필요가 없다. 미국이 원하는 질서로 돌아가지 않은 채 버티고, 미국이 승리를 선언할 수 없게 만들면 된다.
이란을 통제 가능한 질서 안으로 되돌리려 했던 미국의 전쟁은 이제 미국이 감당할 수 있는 출구를 찾는 전쟁으로 바뀌고 있다.
힘은 실제로 사용할 때보다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을 때 더 큰 협상력을 갖기도 한다. 2016년 개성공단 전면 중단도 비슷한 사례였다. 공단의 가동 축소와 송금 제한, 일부 사업 중단, 전면 철수 가능성을 단계적으로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다면 북한은 매 단계에서 다음 조치를 피하기 위한 계산을 해야 했다. 그러나 최종 조치를 한꺼번에 실행하면서 북한의 외화수입을 차단하는 효과와 함께 남한이 이후 사용할 수 있었던 협상카드와 연락 통로, 현지 자산까지 동시에 사라졌다. 철수 가능성은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카드였지만, 철수 이후에는 이미 소진된 조치가 됐다.
미국의 군사력도 같은 역설을 안고 있다. 공습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 이란은 공격의 범위와 수위,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넓게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공격이 반복될수록 미국이 피하는 목표와 감수하지 못하는 비용,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의 양과 정치적 한계가 드러난다. 군사행동이 상대의 양보와 교환되지 못하면 압박카드는 빠르게 소모되고, 상대는 공격 자체보다 공격국이 얼마나 오래 이를 지속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가장 무섭지만, 일단 뽑은 뒤에는 칼날의 길이가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