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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집값은 올랐는데 우리는 왜 가난해졌을까",
  "slug": "your-income-not-your-home-price-makes-you-rich",
  "summary": "집값이 오르면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소득이 그만큼 늘지 않았다면 노동으로 살 수 있는 토지와 주택의 양은 오히려 줄어든다. IMF 이전의 중산층은 지금보다 가난했지만 노동소득을 저축해 토지와 건물을 살 수 있었던 반면, 오늘날에는 자산가격이 소득보다 훨씬 빠르게 올라 기존 소유자는 평가이익을 얻고 다음 세대는 진입 기회를 잃었다. 20억 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재건축 분담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상은 명목자산은 늘었지만 그 자산을 유지하고 재생산할 소득과 현금흐름은 축적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진정한 부는 집의 가격표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의 노동으로 더 많은 주거와 교육, 여가를 살 수 있고 현재의 삶을 유지하면서 미래까지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는 것이다. 부동산 값이 아니라 내 몸값이 올라야 부자다.",
  "body": "# 부동산 값이 아니라 내 몸값이 올라야 부자다\r\n\r\n집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r\n\r\n1억 원에 산 아파트가 10억 원이 되면 장부에는 9억 원의 평가이익이 생긴다. 가진 재산의 명목가액이 열 배로 늘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집을 팔아 더 싼 지역으로 옮기거나 주거수준을 낮춘다면 그 차익을 실제로 사용할 수도 있다.\r\n\r\n그러나 같은 동네에서 같은 수준의 삶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 집만 오른 것이 아니라 주변의 집도 함께 올랐기 때문이다. 10억 원에 집을 팔아도 비슷한 집을 다시 사려면 10억 원이 필요하다. 자녀에게 내가 누렸던 정도의 주거환경을 마련해 주려 해도 그만한 돈이 든다.\r\n\r\n나는 10억 원짜리 집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내 소득으로는 10억 원짜리 집을 다시 살 수 없다.\r\n\r\n이때 오른 것은 내 몸값일까, 내가 깔고 앉은 땅값일까.\r\n\r\n## 부자가 된 집과 가난해진 사람\r\n\r\n진정한 의미에서 몸값이 오른다는 것은 내가 제공하는 노동과 지식, 기술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한 시간 일해서 더 많은 주거와 교육, 의료와 여가를 살 수 있어야 한다. 과거보다 더 좋은 집에 살면서도 저축할 수 있고, 아이를 키우면서 노후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r\n\r\n하지만 부동산 가격만 오르고 소득이 그만큼 오르지 않았다면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집의 가격은 높아졌지만 그 집을 살 수 있는 내 노동의 가치는 낮아진다.\r\n\r\n자산가격이 두 배가 되고 소득이 그대로인 것과 자산가격은 그대로인데 소득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자산 구매력의 관점에서 같은 결과를 만든다.\r\n\r\n월급이 깎이면 누구나 자신이 가난해졌다는 것을 안다. 반면 월급은 그대로인데 집값이 두 배가 되면 기존 집주인은 자신이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월급으로 살 수 있는 집의 크기와 토지의 면적은 절반으로 줄었다.\r\n\r\n우리는 임금명세서가 아니라 부동산 가격표를 통해 가난해졌다.\r\n\r\n## 과거의 중산층은 자기 몸값으로 집을 샀다\r\n\r\nIMF 외환위기 이전의 한국인이 지금보다 풍요로웠던 것은 아니다. 집은 작았고 자동차도 귀했으며 소비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검소했다.\r\n\r\n그러나 당시의 중산층에게는 노동소득을 자산으로 바꾸는 비교적 넓은 통로가 있었다. 월급을 받아 생활비를 쓰고 남은 돈을 저축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계약금을 마련하고, 부족한 부분은 대출을 받아 토지와 건물을 샀다. 대출을 이용했더라도 중심에는 미래의 노동소득으로 원리금을 갚는 과정이 있었다.\r\n\r\n시골의 부모가 논밭을 팔아 자식을 공부시키는 일도 같은 구조였다. 실물자본을 교육이라는 인적자본으로 바꾸었고, 교육받은 자녀는 도시에서 더 높은 소득을 얻었다. 그 소득을 다시 주택과 저축으로 전환했다.\r\n\r\n가난했지만 축적할 수 있었다. 지금 가진 것이 적더라도 내 몸값을 높이면 더 많은 자산을 취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것이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었다.\r\n\r\n오늘날에는 그 관계가 뒤집혔다.\r\n\r\n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경력을 쌓아도 소득이 토지가격을 따라가기 어렵다. 노동을 통해 자산을 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산을 가진 사람이 가격 상승의 대부분을 가져간다. 중산층의 지위는 무슨 일을 하고 얼마를 버느냐보다 어느 시점에 어디의 부동산을 샀느냐에 따라 더 크게 결정된다.\r\n\r\n사람의 가치보다 주소의 가치가 더 빨리 오르는 사회가 된 것이다.\r\n\r\n## 외환위기를 탈출한 뒤 남은 것\r\n\r\n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고 축하했다.\r\n\r\n외환보유액은 다시 쌓였고 기업은 부채비율을 낮췄다. 금융기관의 건전성도 개선됐다. 국가는 위기를 벗어났고 대기업의 수익성은 회복됐다.\r\n\r\n그러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국가와 기업의 장부에서 줄어든 위험의 일부는 가계로 옮겨갔다. 고용은 유연해졌고, 노동자는 그만큼 불안정해졌다. 임금으로 해결하지 못한 주거와 교육, 노후의 비용은 대출이 대신했다.\r\n\r\n저축은 현재의 소득을 미래로 보내는 일이다. 차입은 미래의 소득을 현재로 당겨오는 일이다.\r\n\r\n과거의 중산층은 소득을 모아 자산을 샀다. 이후의 중산층은 자산을 사기 위해 아직 벌지 않은 소득까지 끌어왔다. 집값이 더 오르면 그 선택이 옳았던 것처럼 보였다. 자산가액이 부채보다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r\n\r\n그러나 그것은 내 몸값이 오른 결과가 아니었다. 토지의 희소성과 신용팽창이 만들어낸 평가이익이었다.\r\n\r\n우리는 외환위기를 탈출했지만,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국가와 기업이 회복한 건전성의 뒤편에서 가계는 미래소득과 생애의 안정성을 내놓았다. 외환위기라는 집단적 위험은 각자의 고용불안과 주택대출, 노후불안으로 분산됐다.\r\n\r\n그 대가를 한 단어로 부른다면 ‘가난’일 것이다.\r\n\r\n예전처럼 끼니를 걱정하는 가난만을 뜻하지 않는다.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물건을 사용하지만, 현재의 소득만으로 삶을 유지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가난이다. 집은 비싸졌지만 그 집을 다시 살 수 없고, 자녀에게 같은 출발선을 물려줄 수도 없는 가난이다.\r\n\r\n## 20억 원짜리 집과 3억 원의 분담금\r\n\r\n이 모순은 재건축 현장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r\n\r\n20억 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3억 원의 재건축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면 이상하다. 20억 원의 자산가가 어떻게 3억 원이 없을 수 있을까.\r\n\r\n하지만 그 20억 원 가운데 상당 부분은 토지가격의 상승으로 생긴 평가이익이다. 그 사람이 한 세대 동안 일해서 20억 원의 생산자본을 축적했다는 뜻은 아니다. 집의 가격은 크게 올랐지만 소득과 금융자산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r\n\r\n건물은 40년 동안 낡아갔다. 정상적인 자본보전이라면 그 기간에 건물을 다시 지을 비용도 조금씩 축적했어야 한다. 그러나 주택의 감가상각은 가계 장부에 표시되지 않았다. 토지가격이 오르면서 건물이 낡아가는 사실도 가려졌다.\r\n\r\n마침내 재건축할 때가 되자 숨겨졌던 비용이 수억 원의 분담금으로 한꺼번에 나타난다. 현금이 부족한 소유자들은 용적률을 높이고 일반분양자를 받아들인다. 새로운 소유자가 낸 돈으로 건축비를 충당하고, 그 대가로 자신이 가진 대지지분 일부를 나누어준다.\r\n\r\n우리는 이를 ‘사업성 확보’라고 부른다.\r\n\r\n하지만 기존 소유자의 장부에서 보면 감가상각되는 건물을 다시 짓기 위해 감가상각되지 않는 토지자본 일부를 처분하는 일이다. 새 아파트는 생겼지만 한 사람이 가진 토지의 몫은 줄어든다.\r\n\r\n명목자산은 증가했지만, 자본을 재생산할 능력은 감소한 것이다.\r\n\r\n## 집값이 오르면 모두가 부자가 되는가\r\n\r\n한 나라의 모든 집값이 두 배로 오른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두 배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r\n\r\n기존 소유자의 평가이익은 커진다. 그러나 무주택자와 다음 세대가 지불해야 할 가격도 함께 커진다. 한 세대의 자산 증가는 다음 세대의 진입비용이 된다. 부모가 오른 집값을 자녀에게 온전히 물려주려면 부모는 그 집을 팔아 소비할 수 없다. 반대로 노후를 위해 주택을 처분해 사용하면 자녀는 훨씬 높아진 가격으로 다시 주택을 취득해야 한다.\r\n\r\n사회 전체로 보면 집값 상승만으로 새로운 토지나 새로운 주거공간이 생긴 것은 아니다. 같은 땅에 더 큰 가격표를 붙였을 뿐이다.\r\n\r\n물론 자산가격 상승은 소유자 개인에게 실질적인 경제력을 준다.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고, 매각해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차익을 사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모든 평가이익을 허상이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r\n\r\n그러나 그 힘은 자산을 처분하거나 더 많은 부채를 질 때 비로소 현금이 된다. 같은 주거수준을 유지하고 다음 세대에도 같은 자산을 남기려 한다면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부가 아니다.\r\n\r\n집은 부자가 됐지만 사람은 반드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r\n\r\n## 진짜 부는 무엇인가\r\n\r\n내 몸값이 오르면 선택지가 늘어난다.\r\n\r\n더 좋은 집을 살 수도 있고, 작은 집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울 수도 있고, 노후를 위해 저축할 수도 있다. 직장을 잃더라도 새로운 일을 찾을 가능성이 커진다. 내가 사는 집의 가격이 떨어져도 노동과 기술에서 다시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다.\r\n\r\n반면 부동산 가격만 오르면 선택지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r\n\r\n집을 팔지 않으면 사용할 현금이 없다. 팔아서 소비하면 같은 지역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자녀에게 물려주면 내 노후자금이 부족하고, 노후에 사용하면 자녀가 다시 그 높은 진입가격을 부담해야 한다. 재건축비가 필요하면 대출을 받거나 대지지분 일부를 새로운 소유자에게 넘겨야 한다.\r\n\r\n가격은 올랐는데 자유는 늘어나지 않는다.\r\n\r\n부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 노동이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살 수 있고,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미래를 준비할 잉여가 생겨야 한다. 한 세대가 사용한 물적자본을 다시 만들고 다음 세대를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r\n\r\n그런 의미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생산성의 성과가 개인의 소득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교육과 경력을 쌓은 사람이 더 나은 소득을 얻고, 평범한 직장인이 그 소득을 저축해 다시 토지와 주택을 취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집을 가진 사람의 자산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 집이 없는 사람의 구매력도 함께 올라야 한다.\r\n\r\n## 내 집의 가격이 아니라 내 시간의 가격\r\n\r\n우리는 오랫동안 집값이 오르는 것을 경제적 성공이라고 믿었다. 집을 산 사람은 부자가 됐고, 사지 못한 사람은 뒤처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한 시간 일해 살 수 있는 토지와 주택의 양이 계속 줄어드는 것은 충분히 보지 못했다.\r\n\r\n집값이 오르면 집주인은 기분이 좋다. 하지만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내 소득이 더 빠르게 오른다면 나는 실제로 더 부유해진다. 더 적은 노동으로 같은 집을 살 수 있고, 남은 시간과 돈을 다른 삶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r\n\r\n반대로 집값이 크게 올라도 내 소득이 제자리라면, 나는 비싼 자산을 보유했을 뿐 그 자산을 스스로 다시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이 된다.\r\n\r\n중산층이 두터운 사회는 집값이 계속 오르는 사회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노동소득으로 토지와 건물을 사고, 낡으면 다시 지으며, 자녀를 키우고 노후까지 준비할 수 있는 사회다.\r\n\r\n우리가 물어야 할 것도 어느 지역의 아파트가 얼마나 올랐느냐가 아니다.\r\n\r\n지난 30년 동안 내 집의 가격은 몇 배가 되었는데, 왜 내 노동의 가격은 그만큼 오르지 못했는가. 왜 부모 세대가 월급을 모아 샀던 집을 자녀 세대는 평생의 소득을 당겨와도 사기 어려운가. 왜 수십억 원의 주택을 가진 사람이 낡은 건물 하나 다시 지을 현금은 마련하지 못하는가.\r\n\r\n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부자가 되는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평가이익이 다른 누군가의 진입장벽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몸값이 올라서 부자가 되는 사회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노동으로 삶을 개선할 수 있다.\r\n\r\n집값은 내가 잠든 동안에도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가치가 오른 것이 아니다.\r\n\r\n내가 한 시간 일해서 살 수 있는 삶의 크기가 커질 때, 그때 비로소 나는 부자가 된다.\r\n\r\n**부동산 값이 아니라 내 몸값이 올라야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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