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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서울 집값과 시장원리, “상급지 이동을 막지 말라”는 말의 모순",
  "slug": "seoul-housing-market-principles-upper-tier-mobility",
  "summary": "서울 상급지 이동을 ‘개인의 능력’과 ‘시장원리’의 결과로 설명하려면 그 논리를 끝까지 적용해야 한다. 상급지는 공실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가 점유한 희소한 공간이고, 한 사람의 진입은 다른 사람의 퇴거나 경쟁 탈락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서울에 살고 싶다”는 욕구는 능력이 아니라 선호에 가깝고, 더 높은 지불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역시 시장의 결과다. 시장의 승자는 능력의 결과라고 하면서 시장의 패자는 정책의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다. 시장원리를 주장한다면 내가 경쟁에서 질 수 있다는 결과까지 받아들여야 하며, 그 결과를 수정하고 싶다면 시장논리가 아니라 주거권·형평성·공공정책이라는 별도의 가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body": "# 서울에 살고 싶다는 말은 시장논리가 아니다\r\n\r\n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쟁에서 최근 등장하는 말이 있다. “개인의 능력에 따른 상급지 이동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열심히 일해 소득을 높이고 자산을 축적한 사람이 더 좋은 주거환경을 선택할 자유를 국가가 지나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r\n\r\n그러나 이 문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묘한 모순이 드러난다.\r\n\r\n상급지는 비어 있는 땅이 아니다. 누군가 더 좋은 집을 살 능력을 갖추기만 하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도록 빈집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의 선호지역, 특히 이른바 상급지는 이미 대부분 누군가가 살고 있다.\r\n\r\n그렇다면 한 사람이 상급지로 이동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그 집을 팔거나, 그 지역을 떠나거나, 최소한 그 집을 두고 벌어진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뜻이다.\r\n\r\n이것이 시장이다.\r\n\r\n시장원리를 이야기하려면 여기까지 인정해야 한다.\r\n\r\n30억원짜리 집을 살 능력이 생겼다고 해서 그 집에 들어갈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35억원을 지불할 의사와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집을 산다. 내가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무리 절실해도 그것은 시장에서 가격을 대신하지 못한다.\r\n\r\n“나는 서울에 살고 싶다”는 말은 경제적 능력에 관한 진술이 아니다. 하나의 선호이며 때로는 절박한 감정적 호소다.\r\n\r\n물론 그런 욕구를 사회가 무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직장과 주거지가 지나치게 멀어진 문제, 교육과 의료·문화 인프라가 특정 지역에 집중된 문제, 청년과 서민의 주거비 부담은 분명 공공정책이 다뤄야 할 영역이다.\r\n\r\n그러나 그것은 시장원리와는 다른 논리다.\r\n\r\n시장에서는 희소한 재화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오른다. 그리고 가격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지불능력이 높은 사람이 그 재화를 차지한다. 이것이 시장을 통해 희소한 자원을 배분한다는 말의 실제 의미다.\r\n\r\n따라서 “능력 있는 사람은 상급지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반대의 결과도 받아들여야 한다.\r\n\r\n나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사람이 있다면 내가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 내가 이미 상급지에 살고 있더라도 더 높은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 계속 유입되면 그 지역의 가격과 임대료는 오를 수 있다. 그 결과 기존 거주자가 밀려날 수도 있다.\r\n\r\n이 모든 것도 똑같이 시장의 결과다.\r\n\r\n그런데 부동산 논쟁에서는 종종 시장원리가 매우 선택적으로 사용된다.\r\n\r\n집값이 오를 때는 “수요와 공급의 결과”라고 말한다. 좋은 지역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을 두고는 “능력에 따른 선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지역의 가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가면 갑자기 “평범한 사람도 서울에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다.\r\n\r\n여기서 논리의 기준이 바뀐다.\r\n\r\n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은 시장의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성립하는 원칙이어서는 안 된다.\r\n\r\n서울에 살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서울에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하고 교통망을 확충해야 할 중요한 정책적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서울의 원하는 지역에 거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r\n\r\n특히 ‘상급지’라는 말 자체가 이미 상대적 개념이다.\r\n\r\n모두가 상급지에 살 수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상급지가 아니다. 좋은 학군, 편리한 교통, 쾌적한 환경, 직장 접근성 같은 조건이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 하고, 바로 그 희소성이 상급지를 만든다.\r\n\r\n따라서 “누구나 노력하면 상급지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엄밀히 보면 성립하기 어렵다.\r\n\r\n누군가 올라가려면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r\n\r\n이 문제를 능력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려 한다면 더욱 냉정해야 한다. 시장에서 경제적 능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내가 충분히 부유하다고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같은 집을 원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r\n\r\n그러므로 시장원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결론은 오히려 단순해진다.\r\n\r\n상급지에 들어간 사람 역시 시장의 결과이고, 들어가지 못한 사람 역시 시장의 결과다.\r\n\r\n서울에 살고 싶다는 욕망 역시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이 곧 능력은 아니며, 욕망이 권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r\n\r\n그렇다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결론도 아니다.\r\n\r\n사회는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을 위해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도 있고, 교통 인프라를 확충해 특정 지역에 집중된 입지 가치를 분산할 수도 있다. 교육·업무·문화시설을 여러 지역으로 옮겨 서울 핵심지에 대한 과도한 수요 자체를 줄일 수도 있다.\r\n\r\n그런 정책을 주장한다면 그 근거는 분명해야 한다.\r\n\r\n그것은 “시장원리를 더 잘 작동시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시장 결과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 부분 수정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r\n\r\n두 주장 모두 가능하다.\r\n\r\n다만 시장의 승자는 능력의 결과라고 말하면서 시장의 패자는 정책의 피해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r\n\r\n시장원리를 이야기하려면 자신에게 유리한 절반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r\n\r\n서울이라는 희소한 공간을 시장에 맡기겠다면, 내가 그곳에 살고 싶다는 마음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누군가의 선택 역시 인정해야 한다.\r\n\r\n그것이 불편하더라도 말이다.\r\n\r\n시장이라는 원칙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경쟁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r\n\r\n경쟁에서 내가 질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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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_at": "2026-09-03T07:08:49+00:00",
  "updated_at": "2026-09-03T07:09:34.56562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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