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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천 년 전 실패한 이이제이, 중국은 이란에서 성공하고 있는가",
  "slug": "han-wudi-xi-jinping-china-iran-strategy",
  "summary": "한무제는 흉노에게 원한을 가진 월지를 끌어들여 흉노를 견제하려 했지만, 이미 서역에 정착한 월지가 복수에 관심을 잃으면서 결국 한나라가 직접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했다. 오늘날 중국 역시 미국과 직접 충돌하기보다, 이미 미국과 오랜 적대관계를 가진 이란이 경제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석유 거래와 금융·외교적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외교·제재 역량이 중동에 계속 투입되도록 만드는 효과를 얻고 있다. 특히 미국이 이란 제재를 강화할수록 중국 기업과 금융망까지 압박해야 하고, 이는 오히려 중국의 비달러 결제체계 구축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달러 패권을 이용한 미국의 경제적 강제력에도 부담이 된다. 한무제가 원했지만 얻지 못했던 ‘적의 적을 활용한 견제’, 즉 이이제이가 2천 년 뒤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다.",
  "body": "국제정치에서 가장 값싼 전쟁은 내가 직접 싸우지 않는 전쟁이다. 더 좋은 것은 상대와 이미 싸울 이유가 있는 제3자가 존재하고, 그 갈등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한발 떨어져 있는 것이다. 굳이 명령할 필요도 없다. 적개심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이미 존재하는 원한과 이해관계가 사라지지 않도록 조건만 만들어주면 된다. 중국식 표현을 빌리면 바로 이이제이(以夷制夷)다.\r\n\r\n2천여 년 전 한나라에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r\n\r\n한무제에게 흉노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흉노는 한나라 북방을 끊임없이 압박했고, 한나라가 서쪽으로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넘어야 할 상대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무제가 모든 국력을 쏟아 흉노와 정면대결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r\n\r\n한무제가 눈여겨본 것은 흉노에게 이미 깊은 원한을 가진 월지였다.\r\n\r\n월지는 한때 중국 서북방의 강력한 세력이었지만 흉노에게 참패했다. 중국 사서에는 흉노가 월지 왕을 죽이고 그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다. 월지의 주력은 결국 고향을 버리고 서쪽으로 이동했다. 한무제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상대를 찾기 어려웠다. 한나라가 월지에게 흉노를 미워하라고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흉노는 월지의 나라를 무너뜨렸고 왕까지 죽인 원수였다.\r\n\r\n그래서 한무제는 장건을 보냈다.\r\n\r\n목적은 단순했다. 흉노의 서쪽에 월지가 있고 동쪽에 한나라가 있다면 양쪽에서 흉노를 압박할 수 있다. 한나라의 적과 월지의 적이 우연히 같았다. 한무제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적대관계를 월지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월지가 이미 가지고 있는 원한을 한나라의 전략에 이용하는 것이었다.\r\n\r\n그러나 계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r\n\r\n장건이 갖은 고생 끝에 월지를 찾아갔을 때 월지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그들은 박트리아에 자리 잡았고 새로운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흉노에게 당한 원한은 있었지만 수천 리를 되돌아가 다시 전쟁을 벌여야 할 현실적인 이유는 사라진 뒤였다. 결국 월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무제가 발견한 ‘적의 적’은 적절했지만, 발견한 시점이 너무 늦었던 것이다. 월지는 기원전 2세기 중엽 박트리아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갔다.\r\n\r\n결국 한무제는 직접 싸웠다.\r\n\r\n위청과 곽거병을 앞세운 대규모 원정으로 한나라는 흉노를 크게 약화시키고 하서회랑을 확보했다. 군사적으로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그러나 승리에는 막대한 병력과 말, 물자와 재정이 필요했다. 흉노를 상대하기 위해 한나라가 스스로 비용을 떠안아야 했다.\r\n\r\n여기에서 오늘날 중국과 미국의 경쟁을 바라보면 묘한 유사성이 나타난다.\r\n\r\n중국에 미국은 흉노가 아니다. 시대도 다르고 정치체제도, 국제질서도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한무제와 시진핑을 그대로 포개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강대국이 더 강한 경쟁자를 상대하는 ‘방법’만 놓고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인다.\r\n\r\n미국과 직접 충돌하는 것은 중국에게도 가장 비싼 선택이다.\r\n\r\n미군과 직접 싸울 필요도 없고 미국 경제와 모든 영역에서 한꺼번에 결판을 낼 이유도 없다. 오히려 미국이 자신의 국력과 군사력, 외교력과 금융력을 다른 곳에 계속 사용해야 하는 환경이 중국에는 유리하다.\r\n\r\n그리고 미국에게는 이미 중국과 관계없이 미국을 적대할 이유를 가진 나라가 존재한다.\r\n\r\n이란이다.\r\n\r\n미국과 이란의 적대관계는 중국이 만든 것이 아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양국의 대립은 수십 년 동안 이어졌고 핵 문제, 제재, 이스라엘, 중동의 패권과 미군 주둔 문제까지 여러 갈등이 겹쳐 있다.\r\n\r\n따라서 중국은 이란에 “미국과 싸워라”라고 명령할 필요가 없다.\r\n\r\n중국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훨씬 단순하다.\r\n\r\n이란이 미국의 압박을 받고도 버틸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다.\r\n\r\n그 대표적인 연결고리가 석유다. 미국은 오랫동안 이란의 원유수출과 국제금융 접근을 제한해 이란의 경제적 생명줄을 압박해 왔다. 그런데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가장 중요한 수요처가 됐다. 2025년 기준 중국은 이란의 해상 원유수출 가운데 80% 이상을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고, 2026년에도 미국은 중국의 독립계 정유사와 관련 금융기관을 제재 대상으로 확대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r\n\r\n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이 이란을 위해 전쟁에 참가하느냐가 아니다.\r\n\r\n오히려 참가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r\n\r\n중국은 원유를 산다. 미국의 일방적 제재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중국군을 보내 미국과 대신 싸우지는 않는다. 중국 정부는 동시에 대이란 제재 철회와 정치적 해결, 협상을 주장한다.\r\n\r\n그러면 미국의 입장이 복잡해진다.\r\n\r\n이란만 제재했는데 중국이 계속 석유를 사주면 경제봉쇄에는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을 막으려면 중국 정유사를 제재해야 한다. 그래도 부족하면 중국 은행과 금융기관까지 건드려야 한다. 실제로 미국은 이미 중국 정유사를 제재했고, 이란 관련 자금흐름이 확인될 경우 중국 은행에까지 2차 제재를 적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n\r\n여기에서 이란 문제는 어느 순간 미국과 중국의 문제로 확대된다.\r\n\r\n그리고 달러가 등장한다.\r\n\r\n미국의 힘은 군사력에만 있지 않다. 세계 금융망과 달러를 이용해 다른 국가와 기업의 거래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미국이 가진 막대한 힘이다.\r\n\r\n하지만 이 힘에는 역설이 있다.\r\n\r\n제재가 잘 먹힐 때는 달러패권이 미국의 무기가 된다. 반대로 제재 대상이 너무 넓어지고 제3국 기업과 은행까지 반복적으로 미국의 선택을 강요받게 되면, 그 국가들에게는 달러와 미국 금융망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할 이유가 생긴다.\r\n\r\n중국 입장에서 미국에게 “달러를 포기하라”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r\n\r\n미국이 스스로 달러를 무기로 사용할수록 중국이 비달러 결제와 독자 금융망을 확대해야 할 명분도 커진다.\r\n\r\n따라서 이란은 중국에게 단순한 산유국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r\n\r\n미국이 이란을 방치하면 이란은 살아남는다.\r\n\r\n이란을 경제적으로 질식시키려 하면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까지 공격해야 한다.\r\n\r\n군사력을 투입하면 미국이 직접 비용을 부담한다.\r\n\r\n중동의 긴장이 길어지면 함대와 병력, 탄약과 외교력이 그곳에 묶인다. 호르무즈가 불안해지면 세계 에너지 시장과 미국 국내 정치에도 부담이 생긴다. 2026년 8월 현재 미국은 이란에 대한 해상·경제 압박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추가 경제제재까지 검토하고 있다.\r\n\r\n물론 중국에도 한계는 있다.\r\n\r\n이란이 지나치게 약해져 미국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도 중국에 유리하지 않지만, 반대로 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의 원유 공급망 자체가 무너지는 것도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원하는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r\n\r\n중국에 가장 유리한 것은 어쩌면 승패가 나지 않는 상태일 수 있다.\r\n\r\n이란은 무너지지 않는다.\r\n\r\n미국도 이란을 방치하지 못한다.\r\n\r\n미국은 계속 비용을 지불한다.\r\n\r\n그러나 중국은 직접 싸우지 않는다.\r\n\r\n필요하면 중국은 오히려 협상을 주장하는 중재자의 자리에 설 수도 있다.\r\n\r\n이렇게 보면 중국이 미국과 이란의 적대관계를 만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r\n\r\n이란은 자신의 이유로 미국과 싸운다.\r\n\r\n중국은 자신의 이유로 이란의 석유를 산다.\r\n\r\n그런데 두 행동의 결과가 합쳐지면 미국은 이란을 제압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게 된다.\r\n\r\n그것이 의도된 시진핑의 거대한 전략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전략은 반드시 명령문으로 존재해야만 전략적 효과를 갖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은 이미 존재하는 갈등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r\n\r\n바로 이 지점에서 2천 년 전의 한무제가 떠오른다.\r\n\r\n한무제 역시 월지에게 원한을 만들어주지 않았다.\r\n\r\n흉노가 이미 만들어놓았다.\r\n\r\n한무제는 그 원한을 발견했을 뿐이다.\r\n\r\n다만 그의 문제는 월지의 원한이 이미 식어버렸다는 데 있었다.\r\n\r\n그래서 한무제는 결국 자신이 직접 싸워야 했다.\r\n\r\n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마지막으로 묘한 역사적 아이러니가 하나 더 숨어 있다.\r\n\r\n장건이 찾아갔던 월지는 이후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r\n\r\n흉노에게 쫓겨 서쪽으로 이동한 대월지는 박트리아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월지의 여러 세력 가운데 귀상(貴霜)이 다른 세력을 통합하면서 쿠샨 제국으로 발전했다.\r\n\r\n그들이 정착한 박트리아는 고대의 대표적인 이란계 문화권이었다.\r\n\r\n쿠샨은 점차 그 세계에 깊숙이 들어갔다. 쿠샨 시대에 사용된 박트리아어는 학술적으로 명백한 **이란어**였고, 쿠샨의 국가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동전에는 미트라를 비롯한 이란계 신들이 등장했다. 처음 중국 서북방에서 출발했던 월지계 집단이 수백 년에 걸쳐 이란계 언어와 종교, 문화가 지배하는 세계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r\n\r\n그리고 3세기가 되면 연결은 더욱 깊어진다.\r\n\r\n이란의 사산 왕조가 옛 쿠샨 영토로 진출했고, 사산 왕족과 지배자들은 아예 **‘쿠샨샤’, 즉 ‘쿠샨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이른바 쿠샨-사산 시대다. 월지에서 출발한 정치세계와 페르시아의 정치세계가 마침내 하나의 역사 속에서 겹쳐진 것이다.\r\n\r\n물론 이것을 두고 오늘날의 이란인이 곧 월지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월지가 자리 잡았던 박트리아의 중심도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에 해당한다.\r\n\r\n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r\n\r\n**흉노에게 쫓겨 서쪽으로 떠났던 월지계 세력의 일부는 결국 더 넓은 이란 문명권 속으로 들어가 그 언어와 종교와 정치질서에 녹아들었다.**\r\n\r\n여기에서 역사의 장면이 기묘하게 겹쳐진다.\r\n\r\n2천 년 전 중국의 황제는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월지를 찾아 서쪽으로 사람을 보냈다.\r\n\r\n그러나 월지는 이미 너무 멀리 떠나 있었고, 한무제는 그들을 이용하지 못했다.\r\n\r\n그 월지가 흘러 들어간 곳은 박트리아였고, 그곳에서 월지는 쿠샨이 되었으며, 쿠샨은 다시 이란계 세계의 일부가 되어갔다.\r\n\r\n그리고 2천 년이 지난 오늘,\r\n\r\n중국은 다시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r\n\r\n이번에 중국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월지가 아니다.\r\n\r\n**이란이다.**\r\n\r\n한무제가 흉노의 적을 찾아 장건을 보냈던 그 서쪽 세계에서, 오늘의 중국은 미국과 이미 원한을 가진 이란이 무너지지 않도록 경제적 통로를 열어두고 있다.\r\n\r\n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r\n\r\n그러나 때로는 아주 오래 돌아서 같은 자리로 돌아온 듯한 장면을 만든다.\r\n\r\n**한무제가 찾았지만 끝내 이용하지 못했던 월지는 서쪽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r\n그 일부는 이란 세계에 녹아들었다.**\r\n\r\n그리고 2천 년 뒤,\r\n\r\n**중국은 그 이란과 함께 또 다른 강대국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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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_at": "2026-08-17T00:41:49.06422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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