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호르무즈가 다시 열려도 저금리 시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slug": "deglobalization-inflation-interest-rates-hormuz",
  "summary": "호르무즈 해협은 언젠가 다시 열릴 수 있지만, 세계경제가 과거의 저물가·저금리 시대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미·이란 갈등과 공급망 재편이 보여주듯 각국은 이제 가장 싼 생산과 운송보다 안보와 안정성을 우선하며, 관세·리쇼어링·재고 확대·국방비·에너지 안보·우회 물류라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다. 이러한 탈세계화는 전쟁이나 정권이 바뀐다고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구조적 변화이며, 세계화가 수십 년 동안 제공했던 강력한 물가 억제 효과도 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경기침체 때 금리가 내려갈 수는 있어도 2010년대처럼 낮은 물가를 배경으로 초저금리가 장기간 유지되는 시대가 다시 기본값이 될 가능성은 낮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와 가계부채가 높은 한국에서는 이제 “한국은행이 언제 금리를 내릴 것인가”보다 “앞으로 금리를 과연 어디까지 내릴 수 있는 세계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body": "불가역적 탈세계화, 그리고 멀어지는 저금리 시대\r\n\r\n호르무즈 해협은 언젠가는 다시 열릴 것이다. 문제는 언제 열리느냐가 아니다. 다시 열린 뒤에도 우리가 예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r\n\r\n미국과 이란이 협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국제유가는 내려간다. 시장은 전쟁보다 평화를 좋아하고, 봉쇄보다 개방을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 호르무즈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완전한 정상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r\n\r\n이란은 제재 해제와 봉쇄 완화 등을 요구한다. 그러나 미국이 핵 문제에서 충분한 진전을 얻지 못한 채 이를 모두 받아들인다면 지난 수년간 유지해 온 대이란 압박정책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 된다. 미국 국내 정치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스라엘의 안보 이해와도 충돌한다.\r\n\r\n반대로 이란 역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호르무즈라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를 내려놓을 이유가 없다.\r\n\r\n그래서 호르무즈는 열릴 수 있어도 예전의 호르무즈로 돌아가기 어렵다.\r\n\r\n실제로 최근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자재 선박은 과거 정상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8월 26일 보도된 선박 추적자료에서는 하루 통과 선박이 5척으로 최근 10일 평균 15척보다도 훨씬 적었다. 이란과 오만이 임시 항로를 논의하고 있지만 정상화에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더 큰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r\n\r\n이것은 단지 중동의 문제가 아니다.\r\n\r\n우리는 지금 세계화가 작동했던 기본적인 전제 하나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다.\r\n\r\n지난 수십 년의 세계경제는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었다. 가장 싼 곳에서 생산하고, 가장 빠른 항로로 운반하고, 재고는 최소화하고, 필요한 자금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조달했다.\r\n\r\n기업은 어느 나라가 우방인지보다 어느 나라에서 더 싸게 만들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했다.\r\n\r\n그 결과 중국의 노동력, 중동의 에너지, 미국의 소비시장, 달러 금융망과 세계의 해상교통망이 하나의 거대한 생산 시스템으로 연결됐다.\r\n\r\n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세계화'라고 불렀다.\r\n\r\n세계화의 가장 큰 경제적 선물은 싼 물건만이 아니었다.\r\n\r\n낮은 물가였다.\r\n\r\n기업은 임금이 오르면 생산기지를 옮길 수 있었고, 특정 국가의 가격이 오르면 다른 공급처를 찾을 수 있었다. 물건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아 이동했다.\r\n\r\n이 거대한 가격억제 장치가 중앙은행 뒤에서 작동했다.\r\n\r\n그래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역사적으로 낮은 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돈을 풀어도 세계의 생산능력과 값싼 수입품이 상당 부분 물가상승 압력을 흡수했다.\r\n\r\n우리는 그것을 중앙은행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당 부분은 세계화가 제공한 환경이었다.\r\n\r\n이제 그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r\n\r\n기업들은 더 이상 가장 싼 공급망만 찾지 않는다. 중국 한 곳에서 만들던 부품을 여러 나라에서 나누어 생산한다. 필요한 원자재의 재고를 더 쌓고, 생산시설을 자국이나 동맹국으로 옮긴다.\r\n\r\n경제학적으로 보면 대부분 비효율이다.\r\n\r\n공장이 두 개 필요하면 두 개를 짓고, 하나면 충분했던 물류망에 우회로를 만든다. 가장 싼 나라의 제품 대신 정치적으로 안전한 나라의 조금 더 비싼 제품을 산다.\r\n\r\n하지만 국가와 기업은 이제 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r\n\r\n왜냐하면 그것은 더 이상 낭비가 아니라 보험료이기 때문이다.\r\n\r\nWTO의 2026년 보고서는 이미 이런 변화를 숫자로 보여준다. 지정학적으로 다른 블록 사이의 교역은 같은 블록 내 교역보다 느리게 증가하고 있으며, 2025년부터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을 중심으로 무역 분절이 다시 강화되고 있다. 세계 교역 가운데 최혜국대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비중도 2024년 약 80%에서 2026년 초 약 72%로 낮아졌다.\r\n\r\n이것이 탈세계화의 본질이다.\r\n\r\n무역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r\n\r\n세계 교역량은 앞으로도 늘어날 수 있다. 중국은 다른 나라에 수출하고 미국도 새로운 공급망을 만들 것이다.\r\n\r\n하지만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던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전한 길을 찾는 세계로 바뀐다.\r\n\r\n그 변화에는 가격표가 붙는다.\r\n\r\n관세가 붙는다.\r\n\r\n공장을 이전해야 한다.\r\n\r\n재고를 더 보유해야 한다.\r\n\r\n국방비를 늘려야 한다.\r\n\r\n항로를 보호해야 한다.\r\n\r\n보험료가 올라간다.\r\n\r\n에너지 공급원을 여러 곳에 확보해야 한다.\r\n\r\n심지어 같은 생산능력을 여러 나라에 중복해서 만들어야 한다.\r\n\r\n우리가 얻는 것은 안전이고, 우리가 지불하는 것은 효율이다.\r\n\r\n호르무즈는 이 비용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r\n\r\n과거에는 세계 에너지의 핵심 통로가 당연히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중국 해운회사들은 호르무즈 같은 위험지역을 피해 선박을 배치하고, 해상 환적을 늘리고 있다. 더 긴 항로와 더 복잡한 물류를 선택하면서 비용을 더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r\n\r\n이 선택은 전쟁이 끝난다고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r\n\r\n한 번 위험을 경험한 기업은 공급처를 다시 하나로 합치지 않는다.\r\n\r\n한 번 에너지 안보를 경험한 국가는 비축시설을 철거하지 않는다.\r\n\r\n한 번 국방예산을 늘린 정부가 예전 수준으로 쉽게 돌아가기도 어렵다.\r\n\r\n한 번 지어진 미국의 공장과 인도의 공장과 베트남의 공장은 중국 공장의 가격이 조금 싸졌다고 다음 날 없어지지 않는다.\r\n\r\n그래서 지금의 탈세계화는 상당 부분 불가역적이다.\r\n\r\n정치적 관계가 좋아질 수는 있다.\r\n\r\n관세가 낮아질 수도 있고 전쟁이 끝날 수도 있다.\r\n\r\n그러나 각국이 지난 몇 년간 배운 교훈까지 지울 수는 없다.\r\n\r\n효율만을 믿고 국가의 생존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r\n\r\n그리고 바로 여기서 금리 문제가 등장한다.\r\n\r\n탈세계화의 시대는 저금리 시대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r\n\r\n세계화가 공급 측에서 물가를 눌렀다면 탈세계화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r\n\r\n공급망을 중복해서 만드는 비용, 높은 국방비, 에너지 안보 비용, 관세, 운송비, 재고비용, 리쇼어링에 따른 높은 인건비가 모두 상품 가격 속으로 들어간다.\r\n\r\n여기에 전쟁과 제재가 반복되면 공급 충격의 빈도 자체가 높아진다.\r\n\r\nBIS도 2026년 세계경제를 설명하면서 무역과 지정학의 분절, 고령화, 노동시장 제약 등이 공급을 과거보다 비탄력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공급충격이 반복적으로 물가목표를 넘어서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공급 충격을 그저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기다리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r\n\r\nIMF의 전망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26년 세계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4.7%로 올라갔고, IMF는 중동 분쟁과 무역 분절이 공급망을 훼손하고 가격을 올릴 위험을 명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r\n\r\n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으로 금리가 계속 높아진다는 뜻이 아니다.\r\n\r\n경기가 침체하면 중앙은행은 다시 금리를 내릴 것이다. 금융위기가 오면 제로금리가 다시 등장할 수도 있다.\r\n\r\n하지만 그것은 위기 때 사용하는 금리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n\r\n우리가 2010년대에 경험했던 것처럼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장기간 제로에 가까운 금리를 유지하고, 조금만 경기가 나빠져도 중앙은행이 곧바로 돈을 풀 수 있었던 시대가 다시 기본값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r\n\r\n앞으로의 금리는 내려갔다 올라가는 폭도 커질 수 있고, 물가 때문에 중앙은행이 금리를 충분히 낮추지 못하는 순간도 더 자주 찾아올 수 있다.\r\n\r\n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올해 에너지를 포함한 공급 충격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r\n\r\n그리고 이 변화는 부채가 많은 나라에 특히 가혹하다.\r\n\r\n한국이 그렇다.\r\n\r\n한국은 에너지를 수입하고 원자재를 수입하며 세계 교역에 크게 의존한다. 동시에 가계부채가 크고 주택가격 역시 오랫동안 낮은 금리를 중요한 전제로 삼아 형성돼 왔다.\r\n\r\n과거에는 유가가 오르면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r\n\r\n경기가 나빠지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금리가 내려가면 가계의 이자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r\n\r\n하지만 에너지 충격과 공급망 충격이 반복된다면 중앙은행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을 동시에 보게 된다.\r\n\r\n경기가 나쁜데 금리를 충분히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r\n\r\n저금리를 전제로 만들어진 자산가격에는 이것이 매우 불편한 변화다.\r\n\r\n자산가격의 많은 부분은 결국 미래의 현금흐름을 금리로 할인한 값이다. 금리가 낮을수록 먼 미래의 가치가 비싸지고,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기 쉬워진다.\r\n\r\n지난 십여 년간 부동산과 주식, 채권을 관통했던 가장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r\n\r\n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이것이 아니다.\r\n\r\n“한국은행이 언제 금리를 내릴 것인가.”\r\n\r\n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r\n\r\n“다시 어디까지 내릴 수 있는 세계인가.”\r\n\r\n호르무즈가 내년에 정상화될 수도 있다.\r\n\r\n미국과 중국이 어느 날 무역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다.\r\n\r\n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r\n\r\n그러나 그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세계 각국은 군비를 줄이고, 에너지 비축시설을 없애고, 공급망을 다시 한 나라에 몰아주고, 전략산업을 해외에 맡기며 2010년의 세계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지 않다.\r\n\r\n세계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경험했다.\r\n\r\n앞으로의 세계화는 존재하겠지만 과거처럼 순수하게 효율을 추구하는 세계화는 아닐 것이다.\r\n\r\n안보가 붙고, 동맹이 붙고, 관세가 붙고, 제재가 붙는다.\r\n\r\n그 각각에는 비용이 있다.\r\n\r\n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누군가가 지불해야 한다.\r\n\r\n기업의 이윤이 지불하거나, 소비자의 물가가 지불하거나, 정부의 재정이 지불한다.\r\n\r\n대부분은 세 가지가 함께 지불하게 될 것이다.\r\n\r\n지난 세계화 시대에는 세계가 더 싸게 생산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냈다.\r\n\r\n앞으로의 세계는 조금 비싸더라도 끊어지지 않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r\n\r\n그것은 더 안전한 세계일지는 모른다.\r\n\r\n그러나 더 싼 세계는 아니다.\r\n\r\n세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가 저물가였다면, 탈세계화가 가져갈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는 저금리일지도 모른다.\r\n\r\n호르무한문즈가 다시 열리는 날이 오더라도, 저금리 시대까지 함께 돌아온다고 기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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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_at": "2026-08-30T11:49:52.38814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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