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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우리는 아직 바젤Ⅱ의 세계에 살고 있다",
  "slug": "우리는-아직-바젤ii의-세계에-살고-있다",
  "summary": "2026년 상법 개정에 따른 자기주식 의무소각, 2027년 시행되는 IFRS 18과 MPM 공시, 기업 밸류업 정책은 모두 기업이 자본을 왜 보유하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회사에도 이어지는데, 현재의 바젤Ⅲ 체계는 바젤Ⅱ가 확립한 위험가중자산 중심의 자본관리 방식을 폐기하지 않고 자본·유동성 규제와 아웃풋 플로어를 추가해 그 한계를 보완한 구조다. 결국 기업은 설명하기 어려운 내부유보와 자기주식을 줄이고, 은행은 규제자본 대비 수익성과 측정 가능한 위험을 중심으로 자산을 배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주환원과 금융 안정성은 강화될 수 있지만, 신용이 경제적으로 필요한 분야보다 담보가 명확하고 위험을 계산하기 쉬운 국채·부동산·고신용 자산으로 집중될 가능성도 커진다. 우리는 여전히 바젤Ⅱ가 만든 ‘측정된 위험에 따라 자본을 배분한다’는 인식론 안에 살고 있으며, 바젤Ⅲ는 그 세계관을 대체한 제도가 아니라 그 실패를 제한하기 위해 덧댄 안전장치에 가깝다.",
  "body": "2026년 3월 시행된 상법 개정과 2027년 적용되는 IFRS 18,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영역의 제도처럼 보인다. 하나는 회사법이고, 하나는 회계기준이며, 다른 하나는 자본시장 정책이다.\r\n\r\n그러나 이들을 관통하는 방향은 비슷하다.\r\n\r\n기업이 보유한 자본과 경영진이 제시하는 성과를 더 이상 설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본을 왜 보유하고 있는지, 그 자본으로 어떤 성과를 냈는지, 주주에게 돌려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숫자와 절차를 통해 설명하도록 요구한다.\r\n\r\n## 자기주식은 더 이상 영구적인 금고가 아니다\r\n\r\n2026년 3월 6일 시행된 개정 상법은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면 원칙적으로 취득일부터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했다.\r\n\r\n임직원 보상, 우리사주제도 등 법률이 정한 목적에 자기주식을 사용하려면 자기주식보유처분계획을 작성해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계속 보유하려면 해당 계획에 대해 매년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r\n\r\n합병이나 분할 과정에서 회사가 보유한 자기주식에 신주를 배정하는 것도 금지됐다. 자기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다가 합병·분할 과정에서 의결권이 있는 주식으로 되살리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의 제도적 공간도 크게 줄어든 것이다.\r\n\r\n자기주식은 회사가 발행한 주식을 다시 취득한 것이지만, 회사가 보유하는 동안에는 의결권이나 배당받을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자기주식을 즉시 소각하지 않고 장기간 보유해 왔다.\r\n\r\n그동안 자기주식은 주주환원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임직원 보상, 인수합병, 우호지분 확보와 경영권 방어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예비자산이었다. 개정 상법은 그 예비자산을 계속 보유하려는 회사에 목적과 처분계획을 제시하도록 요구한다.\r\n\r\n회사의 돈이 법적으로 주주의 개인 재산이 된 것은 아니다. 회사 재산은 독립된 법인인 회사에 귀속된다. 다만 경영진이 회사 자본을 별다른 설명 없이 장기간 묶어둘 수 있는 재량은 줄었다.\r\n\r\n이제 자기주식은 소각하는 것이 원칙이고, 보유는 설명과 승인이 필요한 예외가 됐다.\r\n\r\n## 경영진이 만든 이익도 회계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r\n\r\n2027년 1월 1일 이후 시작하는 회계연도부터는 IFRS 18이 적용된다. IFRS 18은 기존 IAS 1을 대체하면서 기업의 손익 표시방식과 성과측정치 공시를 개편한다.\r\n\r\n손익계산서에는 영업, 투자, 재무 범주가 도입되고 영업이익을 비롯한 일정한 중간합계가 제시된다. 기업마다 달랐던 손익 구조를 보다 일관된 형태로 보여주려는 것이다.\r\n\r\n또 하나의 핵심은 MPM, 즉 경영진이 정의한 성과측정치다.\r\n\r\n기업은 보도자료와 투자설명자료에서 조정영업이익, 조정 EBITDA처럼 공식 회계기준에 직접 정의되지 않은 수치를 사용해 왔다. 일회성 비용이나 경영진이 비경상적이라고 판단한 항목을 제외해 회사의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취지다.\r\n\r\nIFRS 18 적용 이후 이러한 지표가 MPM의 요건에 해당하면 기업은 이를 재무제표 주석에 공시해야 한다. 해당 지표를 사용하는 이유와 계산방법, 공식 IFRS 수치와의 조정내역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재무제표 주석에 포함되므로 감사의 대상도 된다.\r\n\r\nIFRS 18이 기업의 이익 측정방식 자체를 바꾸거나 배당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영진이 자신에게 유리한 성과지표만 선택해 제시하고 그 산출과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관행에는 제약이 생긴다.\r\n\r\n경영진이 만든 숫자도 공식 회계수치와 연결돼야 한다.\r\n\r\n상법이 자기주식을 보유하는 이유를 설명하게 한다면, IFRS 18은 경영진이 주장하는 성과가 어떻게 계산됐는지를 설명하게 한다.\r\n\r\n하나는 자본에 대한 설명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이익에 대한 설명책임이다.\r\n\r\n## 설명되지 않는 자본은 주주환원의 대상이 된다\r\n\r\n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행동주의 투자자의 확대는 이러한 변화를 자본시장 측면에서 강화한다.\r\n\r\n기업이 많은 현금과 자본을 보유하면서도 자기자본비용을 웃도는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주주는 그 자본을 계속 회사 안에 남겨둘 필요가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r\n\r\n투자를 통해 충분한 수익을 만들 수 있다면 내부유보는 정당화된다. 반대로 수익성 있는 투자처가 부족한데도 자본을 쌓아두고 있다면 배당이나 자기주식 매입·소각을 요구받는다.\r\n\r\n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의 자기주식 취득금액은 2024년 18조8천억원에서 2025년 20조1천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기주식 소각금액은 13조9천억원에서 21조4천억원으로 늘었다. 기업가치 제고 정책과 주주환원 요구가 실제 자사주 취득·소각 규모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r\n\r\nJB금융지주는 이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r\n\r\nJB금융그룹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장기 목표로 자기자본이익률 15%, 주주환원율 50%, 전체 주주환원 금액 중 자기주식 매입·소각 비중 40%를 제시했다. 2026년 계획에서는 보통주자본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50% 이상의 주주환원율도 검토한다는 자본배분 원칙을 밝혔다.\r\n\r\n여기에는 단순히 배당을 많이 하겠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r\n\r\n금융회사는 대출과 투자에 자본을 사용하고, 위험가중자산에 비례해 규제자본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금융지주의 주주환원은 수익, 자본비율, 위험가중자산 증가율을 함께 고려하는 자본배분 결정이다.\r\n\r\n주주에게 돈을 돌려주기 전에 먼저 규제상 필요한 자본을 계산해야 한다.\r\n\r\n바로 이 지점에서 상법과 IFRS 18, 밸류업 정책은 바젤 규제와 연결된다.\r\n\r\n## 우리는 아직 바젤Ⅱ의 세계관에 살고 있다\r\n\r\n현재의 금융시스템은 바젤Ⅲ 체계 아래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그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바젤Ⅱ에서 만들어졌다.\r\n\r\n바젤Ⅱ의 핵심은 모든 금융자산에 위험이 존재한다고 보고, 그 위험을 위험가중자산으로 환산한 다음, 위험가중자산에 비례해 은행이 자기자본을 보유하도록 하는 것이다.\r\n\r\n은행은 대출금액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의 신용도, 담보, 만기와 손실 가능성 등을 반영해 위험가중자산을 계산한다.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고 감독당국의 승인을 받은 은행은 자체적인 내부등급과 위험모형을 규제자본 계산에 사용할 수도 있다.\r\n\r\n최소자본규제, 감독당국의 검토, 시장규율이라는 바젤Ⅱ의 세 축 역시 현재 바젤 체계의 골격으로 남아 있다.\r\n\r\n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바젤Ⅲ는 이 체계를 폐기하지 않았다.\r\n\r\n자본의 질과 규모를 강화하고, 위험가중치와 별도로 총자산을 기준으로 하는 레버리지비율을 도입했다. 단기 유동성 위험과 장기 자금조달 구조를 관리하기 위한 유동성 규제도 추가했다. 경기 상황에 따라 자본을 더 쌓게 하는 경기대응완충자본도 마련했다.\r\n\r\n그러나 위험을 측정해 위험가중자산으로 환산하고, 그에 비례해 자본을 배분한다는 기본 문법은 유지됐다.\r\n\r\n최종 바젤Ⅲ의 아웃풋 플로어는 이러한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n\r\n은행이 내부모형을 이용해 계산한 전체 위험가중자산은 완전 적용 기준으로 표준방법에 따라 계산한 위험가중자산의 72.5%보다 낮아질 수 없다. 내부모형의 사용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내부모형이 위험을 지나치게 낮게 계산하지 못하도록 표준방법을 이용해 하한선을 설정한 것이다.\r\n\r\n바젤Ⅰ은 위험을 단순하게 분류했다.\r\n\r\n바젤Ⅱ는 은행이 위험을 보다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r\n\r\n바젤Ⅲ는 은행의 위험측정을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위험측정 체계 자체는 유지했다.\r\n\r\n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바젤Ⅱ의 세계관 위에 바젤Ⅲ라는 보강재를 덧댄 시대에 살고 있다.\r\n\r\n바젤Ⅲ는 바젤Ⅱ의 철학을 뒤집은 혁명이라기보다, 바젤Ⅱ의 체계 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교정하는 안전장치에 가깝다.\r\n\r\n## 금융은 실물보다 측정 가능한 위험을 따라간다\r\n\r\n위험가중자산 체계에서 은행은 단순히 대출수익률만 비교하지 않는다. 같은 수익을 얻더라도 얼마나 많은 규제자본이 사용되는지를 함께 계산한다.\r\n\r\n은행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대출보다 자본 대비 수익성이 높은 대출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r\n\r\n담보가 충분하고 부도확률을 추정하기 쉬운 대출은 상대적으로 적은 규제자본을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사업의 가능성은 크지만 담보가 부족하거나 위험을 표준화하기 어려운 분야에는 더 높은 위험가중치와 금리가 적용될 수 있다.\r\n\r\n이 구조에서는 국채, 담보대출, 부동산, 고신용 대기업처럼 위험을 계산하기 쉬운 자산으로 신용이 집중될 가능성이 생긴다. 신생기업, 무형자산, 장기 연구개발과 같이 경제적으로 필요하지만 위험을 계량화하기 어려운 분야는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r\n\r\n은행은 실물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직접 극대화하는 기관이 아니다. 규제의 범위 안에서 자기자본이익률과 위험가중자산 대비 수익성을 관리한다.\r\n\r\n금융이 실물을 지원하기보다 측정 가능한 담보를 따라다니는 현상은 여기에서 나온다.\r\n\r\n## 자본은 점점 더 많은 설명을 요구받는다\r\n\r\n상법은 기업에 묻는다.\r\n\r\n왜 자기주식을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는가.\r\n\r\nIFRS 18은 경영진에게 묻는다.\r\n\r\n당신이 제시한 성과는 어떻게 계산됐으며 공식 회계수치와 어떻게 연결되는가.\r\n\r\n기업 밸류업 정책과 주주는 묻는다.\r\n\r\n회사가 보유한 자본은 자본비용을 넘는 수익을 만들고 있는가.\r\n\r\n바젤 규제는 은행에 묻는다.\r\n\r\n보유한 자산의 위험은 얼마이며, 그 위험을 감당하기 위해 얼마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가.\r\n\r\n이 제도들은 모두 경영진의 재량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다. 대신 그 재량을 측정 가능한 숫자와 승인 가능한 계획으로 바꾼다.\r\n\r\n문제는 측정할 수 있는 것과 경제적으로 중요한 것이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r\n\r\n자기주식 소각과 배당이 확대되더라도 그 자본이 반드시 생산적인 투자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의 자본규제가 정교해지더라도 신용이 반드시 경제적으로 필요한 곳에 공급되는 것도 아니다.\r\n\r\n기업은 설명하기 어려운 내부유보를 줄이고, 은행은 측정하기 어려운 위험을 피한다.\r\n\r\n그 결과 주주환원은 확대되지만 장기적인 실물투자를 위한 위험자본은 부족해지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r\n\r\n우리는 아직 신용의 총량이나 사회적 필요를 직접 관리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측정된 위험가중 신용과 계산된 자본 효율을 관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r\n\r\n그래서 지금의 변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r\n\r\n**우리는 여전히 바젤Ⅱ의 인식론 안에 살고 있고, 바젤Ⅲ는 그 인식론이 만들어낸 실패를 제한하기 위한 안전장치다.**\r\n\r\n자기주식 의무소각과 IFRS 18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r\n\r\n자본의 주인을 새로 정하는 제도가 아니라, 자본을 보유하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하는 제도다.\r\n\r\n다만 설명 가능한 자본만을 효율적인 자본으로 보고, 측정 가능한 위험만을 관리할 수 있는 위험으로 취급한다면 금융은 앞으로도 실물의 필요보다 담보와 계산 가능성을 먼저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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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_at": "2026-07-29T13:39:36.0489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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